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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안식년, 코로나, 그리고 공부 <이재천(프란치스코) 신부 / 인천교구>
   기쁨과희망   2021-01-06 08:59:44 , 조회 : 34 , 추천 : 3



꿈에 그리던 안식년을 맞이하여 히말라야로 날아갔지만 코로나로 인해 급거 귀국을 해야 했다. 친한 선배 사제관, 일어나면 머리가 닿는 좁은 다락방에 살면서 안식년을 지내기 위해 휴학했던 상담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선배 사제관에는 식복사 자매님이 일주일에 두 번만 오신다. 나는 지난 50년간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상의 일들 - 빨래하고 널고 개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냉장고 관리까지 해야 했다. 선배는 힘들어 하는 내게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상이 거룩한 것이야”라고 말씀해주었다.

선배 형은 대학원 수업과 함께 상담-인턴 수련을 제안했고, 뭘 모르는 나는 앞으로 겪을 일들을 예상하지 못하고 덥석 받아들였다. 인턴을 등록하고 나자, 선배는 내게 “이제 죽음의 레이스를 걷게 될 거다”라고 무섭게 예고했다. 정말 죽음의 레이스였다.

2학기가 끝나갈 무렵 선배가 물었다. “뭘 배운 거 같니?”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상담이 끝나고 녹음한 상담내용을 풀어 쓸 때면, 정말 내 입을 찢어버리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았어요. 내가 이렇게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 늘어놓는지 몰랐어요. 잘난 척만 하고.” 선배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는 이 공부를 8년을 하는데도 못 고치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남의 말을 안 듣고 있다는 걸, 아는 것만도 의미가 있는 거 같아.”

상담심리에서는 ‘공감이 있는 경청’을 중시한다. 하지만 나는 그냥 ‘경청’도 못한다. 내가 신자들과 함께하는 사목에 있어서 가장 못하는 것이 ‘경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이거 하나 얻게 된 것이 평생 한 번 있는 안식년이 내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 되었다.
주교와 사제 사이를 갈라놓는 가장 중요한 요인도 ‘경청’이 아닐까?

대개 주교들은 자신들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사제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의견을 이야기하면 판단하고, 지시하고, 가르쳐주려고만 한다. 이런 것을 몇 번 겪다 보면 사제는 주교 앞에서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 주교나 교회 책임자가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경험을 거의 해보지 못하는 것이 단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주교는 사제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하기보다 그냥 따르고 순명하기를 원하는 것 같다. 교회 주교와 사제가 끝없이 평행선으로 달리는 이런 관계 방식에서 우리가 따뜻해지고 온기 넘치는 교회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 장면들을 보면,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장면이 흔하다. 그것도 자기 집단의 이익과 권력과 관련된 이야기만 주장하는 모습에 그 원인이 있다. 상대를 무조건 반대하다 보니 자기들이 이전에 주장했던 것도 반대하는 촌극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 사회는 이제 무엇을 중심으로 통합하고 미래를 만들어 갈지 불안하다.

올해 나는 안식년을 마치고 본당사제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상담공부를 계속하려고 한다. 그것은 경청하지 못했던 나를 좀 더 깊이 자각하고, 지금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싶은 소망 때문이다.

<이재천(프란치스코) 신부 /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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