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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의 사제... (서춘배 신부 / 의정부교구)
   기쁨과희망   2016-06-08 11:33:58 , 조회 : 699 , 추천 : 102


요즘 교회도 고령화 사회에 걸맞게 사제들의 노후 대책에 분주한 것 같습니다. 교구는 교구 나름대로 준비를 해야 하겠지만, 노후 준비는 다른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에게 필요한 노후대책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돈도 필요하고 건강관리도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자전거로 세계를 다녀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정립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은퇴 후야말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았고 내가 누군지를 잘 보여줄 것입니다. 그동안 사제로서 그럴듯한 말을 많이 했지만 늙어서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사제의 삶은 존재자체로서 의미가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렇다면 존재자체로 멋진 복음 선포를 해야 할 때가 바로 은퇴 후일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가고 싶은 데로 갔지만 늙어서는 남이 너의 허리에 띠를 매고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18-19) 하시며 “나를 따르라”고 재차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순교라는 죽음의 형태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죽음을 순교로 승화시킬 필요가 있나 봅니다. 늙고 힘이 빠지면 비로소 온전하게 파스카 신비를 살 기회가 주어집니다.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는 순간 비로소 ‘주님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온전히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암으로 생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원로사제를 찾아가 뵌 적이 있습니다. 사제 생활 중 언제 가장 행복했냐고 물었습니다. 뜻밖에도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젊었을 땐 ‘버렸다’ ‘비웠다’했지만 그것은 말뿐이었다. 지금은 인간적인 희망은 하나도 없고 오직 하느님만이 희망이라고 하십니다.”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나라를 알리라”(루카 9,60). 마치 은퇴 후는 은퇴 후에게 맡기고 너는 지금 여기서 충만한 사목에 매진하라는 말로 들립니다. 하느님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늘 지금 여기에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사제야말로 현재를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명의 사람입니다.

사제는 독신입니다. 독신 그 자체는 가난입니다. 세상엔 잠자리에 홀로 잠드는 수많은 남자들이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노총각 홀아비들입니다. 우리의 독신이 하느님만을 염두에 두는 거룩한 삶의 형태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얼마 전에 기초생활 수급자로 홀로 사시며 오랫동안 투석을 하시던 파스카시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무금, 건축헌금을 꼬박꼬박 내시던 할아버지입니다. 임종 무렵엔 요양원에 잠시 계셨습니다. 마지막을 눈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그분이야말로 충만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여겨집니다.

현 교종께선 추기경시절 관저가 아닌 검소한 아파트에 살면서 세상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세상 사람들 속에서 죽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소박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꿈을 꿉니다. 사는 곳이 어디든 세상 사람들 속에 살다 죽는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는 원로사제의 믿음으로 마지막을 눈물로 고마워하시는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죽길 바랍니다.

서춘배 신부 / 의정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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