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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의 맘은 예수 맘! 과연 그러합니까? ... (함세웅 신부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17-01-06 18:11:22 , 조회 : 551 , 추천 : 102


새해 첫날, 사제의 초심, 서품 때 택한 성경 말씀을 떠 올리며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감사 기도를 올립니다. 그리고 모든 이웃을 위한 헌신의 자세를 다짐하며 함께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1965년 12월 8일, 원죄 없으신 성모님 축일,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식에서 그리스 정교회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와 바오로 6세 교황은 1054년의 파문을 서로 철회하고 화해를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성사신학 교수님이 강의 중에, 두 분의 파문 철회 의식에 대해 그것은 ‘말씀의 전례’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그날 만일 두 분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모셨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가정도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학자들은 그 의미를 정당화하는 여러 이론을 펼쳤을 것이라 했습니다. 어쨌든 그날 파문 철회 의식은 아직 법적 일치(unio canonica)가 이루어지지 않은 한계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문득 “그분들이 뭔데 그들이 파문하면 교회가 깨지고, 그들이 철회하면 일치가 회복되는가”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 교수님은 계속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주교 중심의 공의회였다고 설명하면서 빠른 시기에 사제들이 주축이 되는 제3차 바티칸공의회를 꼭 개최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사실 1965년까지는 7성사를 논할 때 사제나 주교 모두 같은 신품성사를 받은 것이고, 주교는 다만 법적 관할권(jurisdictio canonica)만을 더 지닌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통 스콜라신학의 정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년) 도중 이탈리아 가리발디의 침공 과정에서 공의회는 중단되고 교황의 무류성은 선포되었습니다. 이에 100여 년 동안 신학자들과 주교들이 고심 끝에 창안해 낸 것이 바로 교회헌장 3장의 이른바 주교 동료성(collegialitas)으로 이를 통해 주교들의 위상을 신학적으로 더욱 강화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사제들의 신원과 위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배경과 함께 20세기의 큰 변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사제들이 사제직을 떠났습니다. 구체적 숫자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풍문으로는 바로 우리 한국에서도 1960-70년을 전후해 메리놀회 선교 사제들의 경우 30여 명 이상이,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는 1만여 명 이상 사제들이 사제직을 떠났다고 합니다.

1970년대 전후에는 사제가 사제직을 떠나는 경우에는 모두들 가슴 아파했고 기도했는데 요사이는 알지도 못할뿐더러 관심도 없는 지경입니다. 그뿐 아니라 교구장 주교들의 권한 남용이 너무 심합니다. 그 남용에 대해 제동장치가 필요합니다. 요사이 젊은 사제들의 경우, 고민을 듣다보면 너무 놀라운 것은 주교와 교구청의 행업이 그야말로 조직폭력단과 흡사하다는데, 일리가 있습니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국가와 행정을 사유화한 박근혜와 최순실의 그 모습이 혹시 우리 사제와 주교들 안에 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교구와 본당을 사사화 또는 사유화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촛불 혁명은 교회 정화운동을 재촉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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