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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우리의 엠마오 (이동훈 신부 / 원주교구 가톨릭 농민회 전담)
   기쁨과희망   2017-06-13 11:17:54 , 조회 : 519 , 추천 : 97



우리는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산과 강과 바다를 찾는다. 지쳐 있는 심신을 회복하는데 자연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직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속에 담겨 있는 도심보다 높은 용존 산소량, 오존의 수치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자연 속에서 생명의 하느님을 호흡하기 때문이다. 피정을 위한 집들이나 수도원들이 산 속이나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이러한 치유능력은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란 지역의 상징적 역할에 비길 수 있다. 엠마오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장소이다(루카 24,13-35). 스승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한 제자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다시 고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예루살렘을 벗어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낮선 이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 낮선 분은 제자들에게 구약 성경을 풀이해 주신다. 그들은 성경 해석을 듣고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엠마오에 다다랐을 때 어느덧 서산엔 노을이 물들고 그 낮선 분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함께 묵길 허락하신 그 낮선 분은 저녁 식탁에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 주신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그 낮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차리고 고향으로 향하던 절망의의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걸음을 옮겨 용감하고 기쁘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처럼 엠마오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상징적 장소이다.

자연을 돈을 만들어 주는 자원(資源)으로만 여기는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며, 다른 모든 창조물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는 인간중심적 사고틀 안에서 자연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또한 책을 통해 공부하는 데 익숙해 있는 우리들에게 창조물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난다는 것은 낮선 일이다. 하지만 자연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연은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온다. 들에 핀 작은 꽃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작지만 그 속엔 완벽한 조화로움이 들어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을 만드신 분은 얼마나 더 완벽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우실까?

겨우내 아무것도 없이 죽은 듯 보였던 대지 위에 봄의 아지랑이와 함께 새록새록 솟아나는 들풀들과 마른 나무 가지에서 움트는 새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핏줄을 타고 오는 찌릿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죽은 듯 고요했던 것이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연은 그 속에서 숨죽이며 부활을 준비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서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화해시켜 주셨다”(콜로 1, 20). 우리는 만물과 화해하여 그들과 하나 됨을 체험함으로써 부활의 신비에 다가간다.

그 낯선 분이 성경을 해석해 줄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듯이, 낮선 자연의 신비를 하나하나 알아 간다는 것은 그대로 벅찬 감동이다. 그 감동은 일상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갈 힘을 준다. 자연은 그대로 우리들의 엠마오인 것이다.


이동훈 신부 / 원주교구 가톨릭 농민회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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