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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 사제의 개혁 500주년을 맞아 (함세웅 신부 / 서울대교구)
   기쁨과희망   2017-06-13 11:23:10 , 조회 : 492 , 추천 : 132



올해는 이른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우리 가톨릭인들은 이 표현이 거북해 꼭 ‘이른바’를 붙이던지 또는 단순히 ‘개혁’이라고만 부릅니다. 저도 이 한계에 갇혀있는 옹졸한 한 사람입니다. 어쨌든 개신교권에서는 올해를 아주 크게 또 장엄하게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에게는 큰 아픔과 상처의 회상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루터교는 소수파이고 장로교가 다수파입니다. 장로교단은 칼뱅에 근거하고 있어 한국의 개신교권은 사실 루터교와는 좀 거리가 있다는 점을 염두해 두어야 합니다. 독일 등 북유럽의 경우 루터교는 가톨릭과의 교류 등 일치 운동이 활발한데 칼뱅의 스위스 등은 분위기가 좀 다릅니다. 한국은 개신교권의 주류가 장로교단이라 조금은 더 배타적, 독선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기회에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소책자 『마르틴 루터』(모명숙 옮김, 분도 2017)를 소개하며 올해 내내 아니, 한평생 동안 예수님의 행업과 성서 말씀에 근거해 교회 제도와 체제에 대해 근원적으로 고민하고 성찰하며, 6월 예수님의 마음을 생각하고 종합하여 개선하도록 다짐하며 함께 기도합니다.

루터 500주년 좌담에 임하면서 개신교권의 글들을 읽었습니다. 가톨릭인들에게는 매우 거북한 내용들입니다. 어쨌든 다른 시각과 해석이 제게는 큰 자극과 깨우침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제까지 루터를 부정적 일변도로 배워왔고 또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20세기의 건강한 선구적 신학자들이 루터를 객관적으로 평가했고 특히 나치 히틀러의 폭압에 맞서 싸우면서 독일의 개신교인들과 가톨릭 인들은 서로 하느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이 현장 체험이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등 교회일치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바로 가톨릭 사제입니다. 아우구스티노회의 수사 신부, 신학 교수입니다. 500여 년 전의 루터 사제를 떠올립니다. 입회 과정, 수련기, 신학생 과정, 사제 서품과 사제적 봉사 활동 등 그의 생애를 떠올립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의 ‘탑실 체험’을 되새깁니다. 벼락에 숨진 친우의 죽음을 직면하고서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은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끊임없이 되묻고 그 스스로 하느님 앞에 ‘죄인’ 임을 진심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고 하느님 앞에서 의로울 수 있는가를 고민하던 중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로마1,17)는 말씀에서 해답을 얻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사제 서품 때 성경말씀을 하나씩 선택해 상본에 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그 성서말씀이 과연 우리 생애의 근거, 길잡이가 되고 있는지 되물어야 합니다.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에서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심장을 꿰찔렀습니다. 이 말씀으로 그는 교황 앞에 우뚝 섰습니다. 교계제도와 맞서 싸웠습니다. 7성사 등 전례 일체를 넘어섰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그리스도로’, ‘오직 은총으로’라는 삼중의 신학적 확신이 그를 체제에 맞선 개혁가로 새로 탄생시켰습니다.

우리는 매일미사를 봉헌하고 성무일도를 바치고 기도와 묵상 그리고 사제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행업의 근거가 과연 무엇인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되물어야 합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이 한 말씀이 루터의 생애를 바꿨습니다. 그러나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야고 2,17)는 말씀을 반명제로 보완하고 종합하여 루터의 개혁 의지를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재현하고자 합니다. 하느님, 도와주소서. 아멘


함세웅 신부 / 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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