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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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맛 포”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7-09-11 11:43:07 , 조회 : 513 , 추천 : 188



안식년 동안 짧게나마 선교 체험을 하고 싶었다. 필리핀 루손섬 발랑아교구 마타랑아오 마을에서 아에타족 원주민들과 함께 지내는 윤신부를 찾아갔다. 도착하는 날부터 물이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우기여서 받아놓은 빗물이 있었다. 난생처음 빗물로 샤워했다. 족장님 집에 초대 받아 저녁을 먹었다. 쌀밥과 생선 한 토막으로 가족들이 함박웃음 지으며 식사하는 자리였다. 개울에서 잡은 물뱀 요리가 특식으로 올랐지만 도시형 인간인 나는 먹지 못했다. 집은 블록을 조금 올리고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다. 마을에는 움막으로 보이는 집들이 십 수채 있었고, 방 안에는 대나무 평상이 침대와 의자 역할을 했다. 생일을 맞은 꼬마 모뚜이 집을 방문했다.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데 다섯 살 누나 라이카가, 신부님이 주시는데 받아야지, 다독거리니 두 손 내밀고 비스킷을 받는다. 오누이의 눈망울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 한참 바라봤다.

마을 사람들과 모심기를 하러 내려갔다. 땡볕 아래 허리 굽혀 하는 일은 고됐지만, 주민들의 손놀림은 빨랐다. 내가 심는 모에서도 벼가 나올까 의심될 만큼 일이 서툴렀는데, 11월 수확 때 다시 오라 하시는 동네 분들의 격려에 함께 웃었다. 이렇게 새벽 일찍부터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을 보니, 이 나라의 경제 불의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하고 가난한 이들은 교회 구성원으로서도 소외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할까. 마을 아가씨 에바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를 찾았다. 주류사회에서 아에타족은 가난과 무지, 게으름의 대명사로 통한다. 하지만 에바와 초등학생 동생 데이브는 학교에서 당당했다. 마을 어린이들은 예쁜 교복을 차려입고 똘똘한 표정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사회 통합과 인간 존엄성 회복, 차별받는 원주민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청년들을 초대해서 저녁으로 파스타를 준비했다. 캄캄한 산자락 위에 테이블을 놓고 촛불을 켰다. 갑자기 스콜이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는데, 다들 낭만적인 식사라 외치며 즐거워했다. 빗속의 파스타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내가 차린 음식을 맛나게 먹어 주니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모두들 사랑스럽고 존귀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었다.

하루 시간 내어 롤롬보이를 방문했다. 일찍이 김대건 신부님께서 마카오 민란을 피해 오신 곳이다. 이곳 본당은 신부님을 주보성인으로 공경하며 그분 행적을 자세히 알리고 있었다. 사진 한편에 자그마한 체구의 곱슬머리 아에타족이 보였다. 김대건 신부님도 이들을 만나셨던 거다. 이곳 아이들과도 우애를 나누시며 하느님 사랑의 위대한 현존을 보셨을 테다. 그 만남이 계속 이어지는 듯해 가슴이 벅찼다.

마닐라 빈민 지역에 가보았다. 하천을 사이에 두고 판잣집들이 몇 층씩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방 한 칸에 네댓 명 가족이 생활하고, 좁은 골목길에는 구정물이 흘러내렸다. 거기 한 가운데 로가찌오니스타 신부님들의 조그만 공동체가 있었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내는 그분들의 표정은 편하고 환했다. 필리핀 교회에도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사제들은 극히 드물다 한다. 아래로 내려오신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전하는 이분들이 고맙고 반가웠다.

윤신부는 원주민 마을에 들어오면서 처음에는 나무 아래 움막을 지어 거처를 마련하고, 물이 없어 개울에서 씻었다고 했다. 선교하러 왔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선교당한다고 말했다. 이웃들은 그를 “파덜”이라 친근하게 불렀고, 아이들은 신나게 놀고 가며 “살라맛 포”(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함께 기뻐하는 그의 얼굴에 빛이 비쳐 나왔다. 사랑의 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고마웠다.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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