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좋은 땅, 좋은 씨앗...


   

전임 교구장 주교님(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8-10-08 11:17:31 , 조회 : 77 , 추천 : 9


  

지난 8월 18일 교구장 주교님께서 사임하셨다. 급작스런 일이었다. 미사전례문에서 주교님 호칭도 하지 않게 되었다. 허전한 마음이 밀려들었다. 주교님을 처음 뵌 곳은 로마였다. 나는 유학생활 중이었고 주교님은 처음 ‘앗 리미나’ 오신 때였다. 하루 종일 함께 걸으며 명소를 안내해 드렸다. 내가 공부하던 그레고리오 대학교도 보여 드리고, 이냐시오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예수 성당’도 가보고, 헤르더 서점에 들러 책도 골랐다. 주교님은 독일 유학시절 로마 순례 하시고는 25년 넘어 오신 거라고 설레어 하셨다. 나중에는 당신이 머물고 계신 ‘마르타의 집’에 가자고 하셨다. 거긴 로마에서 오래 지낸다고 가볼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근위병에게 자초지종 설명하고 그 안에 들어갔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매일 미사 하시는 경당에 앉아 주교님과 함께 기도했다. 마음이 벅찼다.

그 무렵 교구 사제들의 환속이 잦았다. 주교님께서 문득 “내가 덕이 없어 그런가” 하며 탄식하셨다. 그런 일이 가장 큰 스트레스를 준다던데 과연 그렇구나 싶었다. 독신생활의 위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중생활보다는 환속이 여러모로 낫지 않나 말씀드렸다.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독신’은 스스로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며 살아 갈 때 가능하다. 다른 데서 허전함을 채우려 하면 독신생활은 구속이고 스캔들이 된다. 이런 말도 덧붙였던 것 같다. 그 무렵 한국 교회 구성원들의 주일미사 참례율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내가 먼저 걱정되어 말씀드렸더니, 주교님께서 등을 두드려 주시며, 가톨릭 정신이 확산될 수도 있으니 괜찮아, 하며 격려해 주셨다. 유럽 교회의 수계 신자 숫자는 이미 오래 전 감소했지만, 사회 문화, 공공정책들 안에서 그리스도교 정신을 곧잘 엿볼 수 있었다. 오히려, 이른바 교회에 우호적이라는 정치인이 집권하면 불의가 더 확산되는 현실이었다.

나는 이태리 본당에 자주 간다 말씀드렸다. 본당신부와 신자들이 어떤 관계로 지내는지 유심히 관찰한다고도 했다. 어느 조그만 교구 성유축성미사 갔을 때, 사제들끼리 껄껄거리며 떠드는데, 어떤 청년이 갑자기 나타나 버럭 소리 지르며 조용히 하라고, 두 줄씩 서둘러 입장하라고 하니까 정말 사제들이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고. 알고 보니 그 청년은 복사 서는 2학년 신학생이었다는 일화도 말씀드렸다. 성장한 교회의 모습은 이런 데서도 드러나는 거겠죠, 하셨던 듯하다.
교구 신자증가율은 하락하는데 사제증가율은 급상승한다는 소식이 한국에서 들려왔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현상이다. 그런데 사제들의 급여인상률이 상당히 떨어진다는 불평도 함께 따라왔다. 이런 말을 듣다보니 같은 사제단의 일원으로서 실망감이 컸다. 후배들이 많이 생겨나는 건 축하할 일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누어 쓰면 되지 않는가, 조심스레 주교님께 말씀드렸다.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송구스러워졌다.

막상 귀국해서는 가까이서 뵙지 못했다. 상황들이 복잡했고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주교님의 문장은 ‘그리스도 하느님의 힘’이었다. 코린토 전서 1장 24절, ‘십자가의 복음’을 역설하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다. 착좌식 강론 중에는 “십자가에 달리는 마음으로 교구장직을 수행하겠습니다” 하셨다. 주교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충실히 걸어가시려 했다. 사제단에게 “청하지도 말고 거절하지도 말아야 한다”고 공식적으로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교의 사제직은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기원한다. 아무런 사심 없이 복음 선포와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힘쓰겠다고 모든 사제들이 서약했다. 주교님은 근본적인 이 가르침을 끊임없이 알려주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8tu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