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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과 성경 (1) -“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듣게 해 주소서” <심용섭(아우구스티노) 신부 / 서울교구>
   기쁨과희망   2020-05-08 10:06:25 , 조회 : 24 , 추천 : 2




이 구절은 시편 51,10의 전반부의 원문 번역이다. 지금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에는 “기쁨과 즐거움을 제가 맛보게 해 주소서”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번역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가톨릭기도서(77쪽)을 비롯하여 서울대교구 소공동체수첩(207쪽), 기타 연령 기도서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 기도서들에서는 누가 그랬는지 알 수 없는 번역이 사용되고 있다. 즉 “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라고 되어있다. 공식번역이나 기도서의 기도문이나 다 원문과 다르다. 히브리어 원문대로 읽으면 그 깊은 뜻과 그 뜻에 따르는 기능의 탁월함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이 시대에도 꼭 필요한 내용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모임이나 만남 등은 생각하지 말고 우리 가톨릭교회 사정만 돌아본다.

제일 걱정되는 것이, 사목적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로 표현할 때, 전교가 안 된다,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또 냉담자가 많아지고 주일에 미사 참례자의 수가 날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이다. 그 이유와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제시할 때 제일 먼저 손꼽는 것이 체험할 수 있는 도움의 필요성이다. 그래서 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른바 경제적 형태의 도움의 부족을 꼽는다. 교회에 와서 얻는 것이 있어야 미신자나 신자들이 더 매력을 느끼고 확신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먹을 것을 제공하고 행사 위주로 모이고 결과에 집착하여 계획을 세운다.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이 모든 것을 앞세운 지금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사회 모두 아니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병균의 차별 없는 공격으로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으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반성이 여기저기서 슬금슬금 돋아날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실천함과 실천될 수 있는 힘을 지닌 기쁜 소식이다. 그래서 복음이다. 복음이 왜 기쁜 소식이냐 하면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언어와 견줄 수 없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는 이 복음에 얼마나 사로잡혔는지 1코린 1,17에서 이렇게까지 선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선포의 중심 내용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1코린 1,23)이다. 이 그리스도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 하느님의 힘이시며 하느님의 지혜이시다”(1코린 1,24). 기쁜 소식, 복음이 지니고 있는 힘의 정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다. 힘을 지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원하는 것이다.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각종 도움은 민주사회가 여러모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다. 교회도 여기에 고유한 모양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 고유한 모양이 복음이고, 이 복음이 민주사회의 오류를 고칠 수 있고 옳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복음을 신자와 성직자들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들으면 하느님이 부수신 뼈까지도 기뻐 뛸 수 있다(시편 51,10 후반부).

예수님은 하느님께로부터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라고 하신다(요한 8,26). 그리고 본 것을 증언하신다고 한다(요한 3,11). 듣고 보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기본적 활동이다(탈출 3,7 이하). 이런 하느님을 본받아야(에페 5,2 참고)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닮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하느님께서 귀를 일깨워주시고 듣게 해주셔야 가능하다(이사 50,4). “귀가 할례를 받지 않으면 들을 수가 없다”(예레 6,10). “마음을 찢는”(요엘 2,13), “마음의 표피를 벗겨”(예레 4,4)내는 변화는 뒤따른다. “천주강생 1962년 천주성교공과 서울대주교 노 바오로 감준” 263쪽에는 시편 51,10을 “너 내 귀에 기쁜 소리를 들리시리니”라고 번역되어 있다. 누가 획하나 잘못 그어 기쁨과 즐거움을 듣지는 않고 돌려달라고만 보채고 있는 셈이다.


<심용섭(아우구스티노) 신부 / 서울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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