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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 (안충석 신부 / 서울대교구)
   기쁨과희망   2016-02-15 11:11:36 , 조회 : 389 , 추천 : 89


우리는 어린 시절 마냥 기쁘고 즐겁기만 한 때를 보냈다. 그 시절에는 죄를 몰랐던 것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부모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면서 희망을 안고 미래로 향하여 살아 나아갔기 때문이리라. 이것으로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을 묵상한다.

어린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자기 부모에게 전적으로 온전히 내맡기는 믿음과 신뢰를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어린 시절을 사는 것이리라.

나는 건강관리를 위하여 지방의 작은 면소재지에서 걷기와 대체의학 치료를 1주일에 사흘 동안 한다. 일 때문에 주일 미사를 갈 수 없다는 그 치료사는 어느 날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치료받으러 신부님들, 수녀님들, 평신도들이 많이 오신단다. 하느님 나라, 천국에 대해서 남들에게 강론이나 교리를 가르치시는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일반 교우들이나 비신자들보다도 그들은 천국에 간다는 것을 더 싫어한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도 하느님의 나라를 산다는 것이 좋다고는 가르치면서도 당신 자신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가서 산다는 것을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서 나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는 그만큼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 살기를 시작해서, 종국에 그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키려 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리지외의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같이 사랑하는 주님 곁에 더욱 가까이 가서 함께 살기를 열망하여 자신의 죽음을 원할 정도였다는 자서전 내용대로 주님 사랑에 대한 열망이 없기 때문이리라.

영국의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단 2막뿐이라고 했다. 비극의 1막과 희곡의 1막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은 그의 말대로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 보면 희극이다.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은 멀리서 보는 희극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부와 수도자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사는 희극을 싫어하고 마다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울 강남 어느 본당에서 연령회장을 6년 동안 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임종하는 모습을 지켜본 분의 말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죽기 싫어하고 더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괴로운 얼굴을 하고 운명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행복을 말씀하신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 20).

사도 바오로께서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주님 안에 하느님의 나라를 기쁘게 살기 시작하고 감사하게 살아가라는 말씀인 것이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지속적인 회개생활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항상 새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고 감사의 기도로 응답하는 생활이 필요하다.

마치 빈첸시오 아 바오로 성인은 두 팔과 두 손을 벌리시면서 “자비와 용서의 하느님 아버지! 이제 제가 당신 품 안에 가도 좋습니까? 허락해 주십시오.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하고 기도하면서 선종하셨다. 마치 “아버지! 제 영혼을 당신께 맡기나이다” 하신 주님같이 마지막 운명을 하셨다.

이는 또한 사도 바오로같이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 나아가며, 항상 새롭게 시작하고 매순간을 기쁘고 감사히 하느님의 나라에 살아 나아가는 자의 기도이다. 진정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자만이 마지막 선종 때에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이 세상을 하직하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날 수 있으리라.

안충석 신부 / 서울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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