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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좋은 씨앗...


   

“너희는 기도할 때...” (노우재 신부 /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6-03-08 14:17:21 , 조회 : 499 , 추천 : 101


신학생들과 함께 성체조배를 했다. 자비의 해 기념  주님을 위한 24시간 기도였다. 하루가 바쁘고 해야 할 일 많고 눈치 볼 일투성이라 피곤할 텐데도 청년 신학생들은 의젓하고 정성스러웠다. 이들과 함께 하는 기도는 나에게 큰 축복이다. 기도가 서로에게 어려울 때도 있긴 하다. 통제하는 도구 또는 잘 보이려는 기회로 이용당하면 기도시간이 부담스러워 진다. 속셈이 있는 기도는 업무와 의무로 변질된 기도, 이미 속물화된 기도다. 깨어 있지 않으면 올바로 기도하지 못한다.

지난 방학 동안 기도하는 공동체 여기저기 방문했다. 진주에는 청년 기도학교가 있었다. 작은자매관상선교회 수녀님들이 애틋한 마음 가득 담아 기도를 인도했다. 토요일과 주일 이틀 동안 청년들이 대침묵하며 기도에 전념했다. 일찍이 보지 못한 모습이라 연신 감탄이 나왔다. 다른 중요한 일들 다 접어두고 열과 성을 다해 기도 안에 자유로이 머물려는 이들이 고귀해 보였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청했다. 제자들이 직접 주님께 “가르쳐주십시오” 요청한 장면은 다른 데서 찾기 어렵다. 그만큼 그들은 기도에 큰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기도에 대한 제자들의 열망과 이들 청년들의 갈망이 하나로 보였다. 이분 수녀님들은 가난한 이들이 봉쇄의 울타리라고 했다. 가난한 이들 안에서 기도하며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고 그 기쁨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하는 사도직. 관상과 활동이 동시에 함께 진지하게 유지되며 통합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건물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공동체의 집은 밝고 아름다웠다.

미사를 드리러 강정에 갔다. 마음속에 늘 미안함이 있었다. 파라오의 병거와 기병들이 눈앞에 보였다. 세상의 권세와 세력을 마주한 이들은 그저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구름기둥에 의지할 뿐이었다. 권력은 마치 진리의 생산자인 양 행세한다. 죄의 한가운데 거짓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으로 세상의 죄를 이겨내셨다. 죄와 고통의 자리, 부활하신 주님께서 현존하여 계신다. 주님 편에 있을 때 죄를 죄로 알 수 있다. 자신의 고통으로 주님의 고통 속에 잠겨들 때 세상의 죄를 이겨낼 수 있다. 현장의 성체성사 안에서 세상의 고통과 인간의 고통은 주님의 고통으로 변모되고 있었다. 죄와 고통을 끌어안고 자신을 살아있는 제물로 주님께 바쳐드리는 기도의 학교가 거기 펼쳐졌다.

관상 수도원에서도 한 주간을 지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그야말로 기도에 헌신하는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을 만났다. 주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죄는 훨씬 더 민감하게 지각된다. 이분들은 과연 다른 데 조금도 눈길 돌릴 여지없이 고통과 죄의 현실을 그대로 직면하고 있었다. 죄의 세력은 교묘하고 교활하게 세상을 지배하려든다. 그 앞에 고통 또한 증폭된다. 이분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을 바라보며 자신의 고통과 세상의 고통이 주님의 고통 안에 끌어 안겨져 있음을 기도를 통해 인식했다. 세상의 고통을 품고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기도드릴 때, 부활하신 분께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이끌어내신다. 죄와 고통에 대한 답변은 그것을 고스란히 안고 기도하는 이들을 통해 주어질 것이다.

“당신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말해주시오,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대답하겠소. 당신이 어떻게 사는지 말해주시오, 당신이 어떻게 기도하는지 대답하겠소.” 멕시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사제들과 수도자들, 신학생들에게 하신 강론 첫 말씀이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생활을 알려주고 우리의 생활은 우리의 기도를 알려준다.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할 때다.

(노우재 신부 /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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