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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 (양기석 신부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16-07-11 14:18:47 , 조회 : 628 , 추천 : 119


중학교 3학년 겨울 초입, 고입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저에게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 될 것이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봐라”하셨습니다. 그저 친구들하고 놀고, 성당 다니는 걸 좋아하던 저는 그 시간 이후로 집과 학교, 성당을 오가면서 ‘어떤 인생을 살아야하나?’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어릴 적 읽었던 위인전의 인물들이 떠오르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존경해 마지않았던 수많은 위인들의 삶이 중3 어린 녀석의 생각에 뭔가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었습니다. 그 끝이 그렇게 행복해보이거나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사참례를 하러 성당을 걸어가던 소나무밭길 즈음에서 갑자기 머릿속에서 “다 이루었다”하시며 세상을 떠나신 분이 떠올랐습니다.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숨이 끊어질 찰나에 “다 이루었다.” 하신 그 말씀이 그렇게 크게 와 닿은 적은 그 때가 처음입니다. 그 이후 예수님처럼 살다 가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저런 삶을 뒤척여보다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본당 신부님이었습니다.

사제로 한 생을 산다면 주님 앞에 나설 죽음의 순간에 “저도 할 만큼 했습니다.” 하고 시건방지게 한 말씀 드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예수님의 삶을 제대로 들어낼 수 있는 삶이 사제의 삶이라고 여드름투성이의 중학생이 결론을 내렸던 겁니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들이 많았지만 신학교를 거쳐 현재 작은 시골본당의 사제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또 다른 고민이 들곤 합니다.

한 생을 폼 나게 살다 폼 나게 죽고 싶어 사제가 되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폼 나게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온갖 잡스러운 것들로 삶은 어수선하고, 지금 같아서는 영, ‘주님께 그래도 괜찮지 않았나요?’라고 당당히 여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현재의 제 모습이 영 폼이 안 나는 듯합니다. “주님,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는 말씀을 서품 성구로 선택하며 세상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당당하게 서 있으리라 했던 다짐이 이제는 자신이 없습니다. 용산과 두물머리에서 시작된 고통 받으시는 주님과의 만남은 밀양주민들과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처럼 힘겨워하시는 주님을 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과의 만남은 그 정점이라 해도 맞을 것 같습니다. 현장을 찾으며 만나는 분들에게 별다른 말씀도 건넬 능력도 없는 무능한 사제였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현장들을 찾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피로함을 많이 느낍니다. 자꾸 게을러져서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합니다. 본당신부라는 틀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어느덧 이것저것 신경 쓰고 재곤 하는 나쁜 습성이 생겼습니다.

속을 모르는 몇몇 이들은 제가 이전보다 유연해졌다 칭찬하기도 하지만, 제 속은 점점 급해집니다. 이러다 ‘다 이룬 게’ 아니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허탈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서게 될까봐 걱정스럽습니다. 예전보다 하는 일은 많아졌지만, 무엇인가 부족한 상태가 지금의 제 상태입니다. 하지만, 해답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령의 지혜가 저를 이끄시고, 주님의 손이 제게 힘을 주신다면 훗날 “명하신 것 이루고 왔습니다” 말씀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양기석 신부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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