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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7-03-16 15:40:35 , 조회 : 473 , 추천 : 91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지난 한달 반 동안 병원 체험을 했다. 중환자분들과 호스피스 환자분들 곁에 있었다. 일생 고생하고 삶에 시달리다 마지막 자리를 찾으신 분들, 병들고 가난한 분들을 가까이서 보고 만났다. 우연인지, 예수님의 공생활을 기념하는 연중시기가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주님의 복음 선포는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이루어졌다. 복음 메시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에 따라 의견들이 다르다. 하지만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다. 병든 이들 가운데 가장 불쌍한 이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이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이가 병들고 가난한 사람이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이들을 일차적인 수취인으로 하여 선포되었다. 복음의 뜻을 알아듣기 위해서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필수적인 것 하나가 예수님이 우선적으로 만나신 이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님 앞에서나 우리들 곁에서나 항상 존재한다. 단, 보이지 않게, 숨겨진 방식으로 마치 없는 듯이 가까이 있다.

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첫 수취인이 되었을까? 속절없이 죽음 앞에 놓인 사람은 다른 욕심을 내려야 낼 수가 없다. 죽음의 힘은 참으로 강력하다. 인간이 쌓아놓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앞날을 기대하지도 못하게 한다. 그래서 그럴까, 그분들의 말씀은 간결했다.

속셈이 없었다. 단순하고 진솔하며 자기 삶을 담아내고 있었다. 과거의 아픔과 부끄러움에 지배당하지 않았다. 포장하고 떠벌리고 꿍꿍이속이 있는 말은 사람을 옭아매지만, 사심 없고 담담한 말은 사람을 살려낸다. 이분들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세상에 생명을 남겨주고 있었다. 신앙에 가장 근접한 인간의 태도를 보여주었고 신앙언어에 가장 가까운 말을 들려주었다. 율법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분을 잘 안다고 생각한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했다.

그분을 추종했던 제자들과 군중들은 예수님께 한몫 얻을 것을 기대했다. 예수님 사랑의 능력이 수용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병자들은 주님께 치유를 받았다. 가난하고 아픈 이들은 예수님을 배척할 수도 무시할 수도 다른 욕심을 낼 수도 없이, 그저 주님 앞에 설 뿐이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이들 안에서 받아들여져 풍성한 효력을 내었다.

중환자실과 호스피스 병동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는 걷어낼 수 없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인사드린 분 가운데 그 다음날 못 뵌 분들이 꽤 많으셨다. 다시 일어나면 신앙생활 성실히 하고 봉사활동도 해보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분들이 밤사이 돌아가셨다. 참으로 먹먹했다. 전문적인 호스피스 방법을 익히지 않은 나는 그저 이분들 표정과 말씀에 집중하며 함께 기도하고 안수 드리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묵주기도를 가르쳐드린 분은 호흡이 가빠 소리를 내긴 어려워하셨지만 진지하게 귀로 들으며 마음으로 따라오셨다.

기도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다. 편안하고 밝은 모습으로 기도 하셨고, 매일같이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하게 인사하셨다. 주님의 현존을 강력하게 의식하는 이들의 말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었다. 사실 교회 구성원들 안에도, 세상 안에도 똑같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모든 이가 죄의 세력에 휘둘려 고통스러워하고 또 죄를 지으며 이웃을 고통스럽게 한다. 하지만 기도와 신앙은 하느님의 빛을 바라보게 한다. 그분 사랑의 빛이 어둠 속에 떠올랐다. 그분 생명의 빛이 죽음의 심연 아래에서부터 비추인다. 하느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27년 동안이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료 자선병원을 운영해 온 성가소비녀회에 경의를 표한다.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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