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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하는 토마스 ... (황상근 신부/ 인천교구)
   기쁨과희망   2017-04-28 10:30:00 , 조회 : 450 , 추천 : 70



5학년 신자 어린이에게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하루는 이렇게 물었다.
“너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느냐?”
난처한 질문을 받은 어린이는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거야” 하고 대답했다. 친구는 물질적인 관점에서 질문을 하였으나 그는 정신적인 관점으로 대답하였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 토마스도 “나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를…만지고 눈으로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요한 20.25). 토마스는 예수님이 잡혀서 돌아가실 것이라고 하였을 때 우리도 함께 죽자고 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고 굳은 믿음을 가졌었다. 토마스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고 굳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 의심을 풀어보려는 적극적인 자세이고 좋은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신앙생활에서 의심은 때로 믿음을 발전시키고 성숙하게 이끌어 준다. 거짓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도 진실을 알아보려는 능동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과학의 세계에는 의심이 없다. 모든 것을 실험하고 증명하기 때문이다. 2+2=4처럼 명확하고 객관적인 진리이므로, 안 믿을 자유가 없고, 믿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 이런 세계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신앙의 진리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는 늘 의심이 따른다. 같은 것을 보고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진리가 객관적이 아니라 그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주관적이다. 사랑, 정의, 진리, 양심 등 하느님과 가까운 개념들이 이론이나 설명으로 깨닫기보다는 그 사람의 삶의 자세나 체험에서 얻어진다.  

예수님이 부활하였을 때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 함께 걸으며 대화를 했어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이 성경 말씀을 설명해주시고 감동을 받고 식탁에서 빵을 나눌 때에야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데는 신앙이 있어야 했다. 신앙은 말씀을 들음으로 시작되지만 신앙이 굳어지는 것은 체험이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이론이나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체험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 많다. 겨울에 내리는 눈을 보지 못한 필리핀 사람에게 눈이 어떻다고 설명으로 알아듣게 할 수 없다. 눈으로 보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친구를 소개할 때 많은 말로 이야기 하는 것보다 직접 두 사람이 만나 대화를 통해 서로를 깊이 알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야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20.29).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랑이 많은 사람은 하느님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톨스토이의 말이다. 성서에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사랑이 없으면 하느님을 알 수 없다는 말씀이 있다. “하느님 같은 사람이 하느님을 본다”라는 말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어린이 말대로 마음으로, 특히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을 본다고 성서는 말한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 5.8).


황상근 신부 /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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