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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주교님들을 보면서… (황상근 신부 / 인천교구)
   기쁨과희망   2017-07-12 15:04:20 , 조회 : 222 , 추천 : 52



일본 노인 주교님의 말씀

40여 년 전 일본에서 새 주교님의 착좌식이 있었다. 연세가 많은 은퇴한 주교님이 이렇게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새 주교님께 부탁하고 싶은 것은 로마를 쳐다보고 일하기보다는 일본 국민을 바라보면서 일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가깝게 지내던 일본의 노사제로부터 이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요즘도 많은 신부들이 로마를 쳐다보고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40년 전에 특히 당시 그 나이 드신 신부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사셨다는 것이 충격을 주었다.
우리나라 어떤 종교학자가 각 종교의 특성을 연구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가톨릭 신부들에 대해 첫 머리에 이렇게 표현했다.

“신부들은 한 마디로 로마에서 파견된 사람들 같습니다.”

신학교 양성 과정과 전례, 주교 인사권까지 모두 로마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자는 종교가 종교의 틀 안에 있기보다는 민중 속으로, 또 낮은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이 민중과 함께했는데 종교가 교조화되면서 민중 위에 군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사람들 속으로, 낮은 사람들에게로 다가오셔서 그들과 함께 어울리시고 사랑하시다 돌아가셨다.


주교님들의 끈질긴 교황청 방문

일본 다까마쯔라는 작은 교구의 주교님이 공적인 서한을 통해 어떤 교우를 지명해서 비난하였다. 그 신자는 주교님을 명예훼손죄로 고발하였다. 재판이 열리고 그 주교님은 벌금형을 받았다. 이 사건은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 교구에 카테쿠메나토 신학교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일본 다까마쯔 교구에 네오 카테쿠메나토 신심단체가 들어왔다. 어떤 신자들은 좋아하였지만 어떤 신자들은 반대하였다. 그 후 네오 카테쿠메나토는 그 교구에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일부 신자들은 신학교 설립이 옳지 않다고 반대하였다. 신자들이 적은 교구이고 일본 사람들 중에는 거의 성소가 없으므로 신학교가 필요치 않다고 하였다. 사실 신학교 설립 10년 후 사제들이 22명 배출되었는데 그중 일본 신부는 2명뿐이었다. 그곳 교구장은 나이도 많고 계속 갈등이 생기고 재판에서 벌금형까지 받음으로 교구에서 은퇴한 후 세상을 떠났다.

새로 교구에 부임한 교구장은 서로 갈라져 있는 교구 신자들의 마음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 분은 이 교구에 오기 전, 다른 교구에서 신자들의 갈등을 잘 수습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화합의 길을 모색하였으나 여러 사람들로부터 네오 카테쿠메나토 신학교가 있는 한 교구의 일치는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그 신학교 신부들의 사목 영향을 받은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 간에 갈등은 더 커져 간다고 했다.

일본에는 16개 교구가 있는데 주교님들 전체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토의하였다. 그리고 4년마다 주교단이 교황청을 방문하는 기회에 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당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네오 카테쿠메나토를 추천하지만 회합을 통해 승인하지는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그 후 일본 주교님들은 교황청과 복음화성성에 4명의 대표단을 2번이나 보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해당 교구 주교님은 9번이나 교황청을 드나들었다고 하였다.  마침내 교황청에서 사람을 보내어 신자들 사이에 분열과 그 원인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신학교의 문을 닫고 학생들은 로마로 갔다. 네오 카테쿠메나토는 전 세계에 72개의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20여 년 전에는 뉴욕에서 세계 주교님들 253명에게 수 일간 피정을 개최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일본 주교님들이 작은 교구 신자들의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기 함께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교구장 주교님은 9차례나 교황청을 방문했는데… 만일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 더 방문했을 것이라는 말을 했다. 다른 나라 주교님들이 이렇게 신자들의 화해를 위해 교황청을 상대로 오랫동안 끈기 있게 노력한 예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 주교님들은 전에도 여러 번 토착화 등에 대해 교황청에 문제 제기를 하는 등 일본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 천주교회는 신자 수가 100만 명이라고 하지만, 그중에 필리핀, 남미 노동자 등 외국인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렇게 신자들의 숫자는 미미 하지만 숫자에 비해 영향력을 미친다고 한다. 한국에 비해 숫자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일본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고 한다. 일본 사회는 전체가 우경화되어 있고 비판 세력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 풍토에서 일본 주교단이 좌경화 편에서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조직 중에 하나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주교님

일본의 다니 다이지 주교는 일본 신자 51명을 이끌고 중국 위순 감옥이 있는 다렌시 한인 성당에서 안중근 의사 추모미사를 올렸다. 그는 이미 청년 시절에 “재일 동포 차별‘등에 부당함을 느끼고 이런 운동에 참여하면서 안 의사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후 그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방문하는 기회에 미처 알지 못했던 안중근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안 의사에 대해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니 주교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서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안 의사 마음의 고통에 대해 공감한다. 대화와 평화의 방법으로는 일본 침략을 막을 수 없었던 상황에서, 안 의사가 느꼈을 고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돌이고 일본이 한국을 강제로 합병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안 의사가 순국한 뤼순에 와서 그의 평화의 뜻을 기리고 싶었다.”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이 안중근에 대해 테러분자로 인식하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현실에서, 비난 받을 것을 무릅쓰고 일본 전국에서 자발적인 신자들을 이끌고 뤼순을 방문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일본 주교님들 중에는 다니 주교님처럼 한국에 대해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 분들이 많다. 우리나라가 박정희의 유신 독재체재 아래서 인권 탄압이 심할 때 일본천주교회 정의평화위원회를 통해 오랫동안 많은 도움을 주었다. 민주화, 인권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해 일본천주교회에서 모금을 여러 번 하였다.

같은 민족 안에서도 민주화 운동이나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일본 사람들로부터 거부감을 느끼는 일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10여 년에 걸쳐 이런 운동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 것이다.

* 편집자주: <기쁨과희망> 제5호(2010년)에 실렸던 글입니다.        


(황상근 신부 /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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