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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좋은 씨앗...


   

산골 동네 해결사 홍반장 말보다 행동, 전도가 절로
   기쁨과희망   2017-10-16 12:03:49 , 조회 : 302 , 추천 : 78



홍천 도심리 교회

길이 끝나는 곳에 교회가 있다.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 도심리 교회다. 깊은 산골에 12평 교회가 별처럼 박혀 있다. 홍천읍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도심리 마을 입구에서부터 교회로 올라가는 5킬로미터의 길엔 개 복숭아와 돌배가 심어져 있다. 도심리 30가구 주민들이 공동으로 심어 3년 전부터 생과와 농축액으로 팔아 수익을 올리는 과실수다. 이 마을 반장이 도심리 교회 홍동완 (54) 목사다.

홍 목사는 애초 아프리카 선교를 꿈꿨다. 이를 위해 먼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4년간 선교 훈련 차 머물렀다. 그곳에서 그는 선교사들끼리 하나 되기는커녕 갈등하고 비방하는 걸 목격했다. 옆 교회야 망하든 말든 오직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개교회주의가 치성한, 한국 교회 이전투구의 압축판이었다.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 그는 진로를 틀어 2002년 이 산골로 들어왔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가 장애인 시설을 한다는 걸로 알고는 차량 통행까지 막았다. 홍 목사의 호소에 반상회가 열렸다. 반상회에서 반장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말하지 말 것’을 약속하라고 했다. 그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심 다짐했다.

“그래 말로 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삶과 행동으로 증명하겠습니다.”


“결국은 정체 드러낼 것” 의구심

그때부터 마을의 막내인 그는 주로 노인인 주민들의 해결사가 되었다. 힘든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목사’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저 ‘동완이’로 불렸다.
교회도 개척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의구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은 언젠가 정체를 드러낼 것’이라며 비방이 그치지 않았다.

부인 이은림(53)씨는 ‘마을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있었다.’고 했다.
주민들끼리 모여 ‘길 가운데 있던 돌을 누가 치웠지?’ 라고 물으면 다른 주민이 ‘누가 치우긴 누가 치워, 동완이 아니면 이 동네에서 궂은 일 할 사람이 있어?’ 라는 대화들이 오가며 비방이 어느 순간 칭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주민들은 마을 총회를 열어 만장일치 박수로 홍 목사를 마을 반장으로 뽑았다.

홍 목사는 더 바빠졌다. 주민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일분 대기조처럼 달려 나갔다. 그러던 어느 해 정월 대보름날 거리에 돼지머리와 시루떡과 북어와 과일들을 차려놓고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에 주민들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에게 대표기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적막한 산골에 ‘해와 달과 별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울려 퍼졌다. 그런데 기도가 끝나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아멘’하고 화답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마을 주민의 칠순 잔치에 갔을 때였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주인공 할아버지가 그에게 ‘우리 마을에서도 낮엔 일하고 밤엔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술김에 한 말이려니 했는데 그가 정말 이 마을 첫 번째 세례자가 되었다. 그렇게 8년 전 교회가 시작되었다.

4년 전엔 그가 처음 왔을 때 반장이던 분이 교회 신자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사람이 처음 홍 반장을 예수쟁이라고 얼마나 비방하고 다녔는데...’라며 놀라워했다. 크리스천 한 명 없던 마을에서 이제 주민 45명 가운데 절반이 교회에 나온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도 부활절과 추수 감사절 예배 때는 모두 교회에 모인다.

도심리 교회는 독특한 게 많다. 십일조가 없다. 또한 주일날에도 예배는 오전에 한 번만 드리고 오후가 되면 지역 섬김 예배로 대체한다. 마을 주민 한집씩을 골라 농사일과 허드렛일을 집중적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홍 목사는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지, 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한게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라 한 것 아니다.”

그는 믿음만을 강조하기 보다는 삶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도 교회를 개척한게 아니라 12명의 제자들과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위 밭 일 천 평에 곰취를 심어 함께 주민들과 가꾸고 있다. 곰취 판매 대금은 함께 나눈다. 얼마 전엔 화촌면 마을 만들기 경진대회에서 16개 리 중 1위를 차지해 어르신들은 “다 도심리에 복덩어리가 들어와서”라고 말했다.

언젠가 마을 어르신이 ‘성직자는 원래 그렇게 화를 안 내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저도 속이 새까맣게 탄 적이 많아요.”라고 답했다. 여전히 016 휴대폰을 쓰는 홍 목사의 낡은 2G폰엔 ‘절대불노(화를 안냄)’이란 글이 쓰여 있다. 그에겐 삶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수도장이다.

  처음 올 때 초등학교 1.3학년이던 두 딸도 성인이 돼 서울로 가고 이제 부부만 남은 산골에서 그들은 텔레비전도 없이 살아간다.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그 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은 저녁을 물린 뒤 7시 반부터 한 시간 반 동안 둘이서 교회에 앉아 세상 사람들을 위해 하는 중보기도란다.


“도심리에 굴러들어온 복덩이”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려면 물고기가 많은 넓은 곳에 갈 것이지 왜 산골에서 이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전도라는 이름의 탐욕마저 내려놓고 ‘작은 불씨’ 하나 심는 것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긴다. 또한 이곳이 그 무엇보다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시의 큰 교회에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인격적 교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정 수가 넘으면 대기업식 고객관리나 다름없게 돼 뜬 구름 공동체가 되어버려, 신자가 많고 프로그램과 시설과 서비스가 좋아도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건강한 몸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연결되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그렇게 인간적 교제가 일어나야 행복해져요. 이렇게 마을 사람들과 자연과 늘 함께 친하게 지내는, 이게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은 창조 세계인데 왜 행복하지 않겠어요.”        


한겨레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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