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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땅, 좋은 씨앗...


   

삶의 자리 (황상근 신부 / 인천 교구)
   기쁨과희망   2017-12-08 11:18:13 , 조회 : 388 , 추천 : 50



지방 교구에 동창 신부가 둘이 있었다. 한 신부는 산골짜기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가톨릭농민회 전국 지도신부를 했고 무너져가는 농촌을 보면서 마음이 아파 18년 동안 70세까지 농사일을 했다. 또 한 신부는 전문대학의 학장이었다. 전국 전문대학 학장연합회 회장도 하며 10여 년간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 두 사람은 학생시절부터 40년간 친한 친구로 지냈다. 유신독재 시절에는 사회운동을 하다 둘이 짧은 기간이지만 감옥에도 함께 다녀왔다.

50대 중반 학장이 된 다음에도 자주 산골에서 농사짓는 신부를 찾아갔다.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우정을 이어나갔다. 자신이 그 위치에서 보수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위험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 사람은 한국의 상류층 사람들과 한 사람은 가난한 농민들과 살면서 서서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사회 정치의식에서 이견이 없었는데 조금씩 의견 충돌이 일어났다. 어느 날 저녁 둘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고 그 후 헤어지고 말았다. 모두 열심히 살았고 누가 더 잘못했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렵다. 삶의 자리가 두 사람을 갈라지게 했다. 한 친구는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대화가 어려우니 만나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몇 년 후 모두 72세에 심장 계통의 병으로 일 년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떠났다.

수 십 년간의 우정도, 좋은 말씀이나 기도까지도 두 사람의 마음을 다시 하나로 이끌지 못했다. 누구를 만나고 삶의 자리가 어딘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의식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칼 맑스의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의미의 말을 했다.

“생각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자리가 삶을 변화 시킨다”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에는 대화로 안 되고 투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주교님 한분은 서울에서 지방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많이 변하셨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 지셨다. 그래서 몇 사람이 대화중에 변하신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분 대답이 “만나는 사람, 식사하는 사람들이 달라지니까 삶의 의식도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좋은 정신을 가져야 된다. 그래서 좋은 말씀을 들으며 많은 교육을 받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대부분 좋은 정신, 높은 이상은 머리와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좋은 이상을 생활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은 쉽지가 않다. 사람들은 좋은 이상을 실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그런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만하기 쉽다.  

최근에 퇴직한 어떤 사람은 어려운 사회복지 시설에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있다. 그곳에서 친구들이 봉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어울리다가 봉사의 길로 들어섰다. 좋은 교육을 받지도 않고,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좋은 일 하는 친구들 때문에 보람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삶의 자리, 만남의 자리에서 멀어지고 이론 속에 생활하고 있다. 성당에서 부자, 가난한 사람, 노인, 젊은이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깊은 만남은 어렵고, 외적이고 업무적인 만남인 경우가 많다. 대화나 삶에서 오는 기쁨이나 고뇌를 잘 나누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사는 느낌이다.


황상근 신부 / 인천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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