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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니”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8-02-07 13:08:01 , 조회 : 99 , 추천 : 19



안식년을 기회로 시로-말란카라(Syro-Malankara) 가톨릭교회를 방문했다. 유학 시절 친분 깊었던 죤 바이필 신부가 남인도 케랄라 주의 마벨리카라 (Mavelikara) 교구에서 사목 중이었다. 마르 이냐시오스 주교님의 배려로 교구청에 머물며 여러 사목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일찍이 토마 사도의 복음 선포로 신앙 공동체가 세워진 이곳은 여전히 믿음의 열기가 뜨거웠다. 곳곳마다 흰색의 교회 건물이 세워져 있었고, 미사 때마다 교우들이 넘쳐났다. 여성들은 화려한 사리를 입고 고개 숙여 기도했고, 중년 남성들도 진지한 표정으로 전례에 참여했고, 아이들은 벌써부터 침묵을 지킬 줄 알았다. 예로부터 안티오키아 전통을 따르며 고유한 방식으로 전례를 거행해 온 이들의 미사는 역동적이었다. 집전 사제는 고대 시리아어가 섞인 경문으로 성가를 부르듯 음을 높여 정성을 다해 기도했고, 교우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에도 고요하게 신비 속에 잠겨들었다.

시로-말란카라 교회는 16세기 초 포르투갈 상선을 따라 상륙한 선교사들과 큰 갈등을 겪으면서 형성되었다. 라틴 전례를 강요받았을 때 격렬히 저항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편교회와 친교를 맺고 독자적인 전통도 인정받았다. 이런 아픔의 역사가 자양분이 되었는지, 에큐메니컬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교회일치주간 동안 저녁때마다 본당을 돌아가며 모임을 개최했다. 주교님은 정교회와 개신교의 성직자들을 초대하여 일치를 위한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교회의 연륜이 이렇게 드러나는구나 싶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매일 먼 길을 따라다니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반갑게 인사 나누며 함께 드리는 기도의 기쁨이 컸다. 그러고 보니 타종파 성직자들과 더불어 성심껏 기도한 것은 나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본당의 날에 초대 받았다. 무슨 행사를 할까 호기심이 생겼다. 신부님들과 교우들이 성전에 모여 저녁기도를 장엄하게 드리고 행렬을 시작했다. 본당 축일은 마을의 축제였다. 복장이 특이한 사람들이 와서 북을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힌두교도들이라 했는데, 많은 성인들이 이들의 공경을 받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 세워진 성모상 앞에서 초를 봉헌하며 기도하는 이들 가운데서도 힌두교도들이 많았다. 마벨리카라 교구는 주교님의 영명 축일을 성대하게 지냈다. 매일 수백 명씩 교우들은 물론 지역주민, 타종교 지도자, 기관장들이 축하인사 드리러 왔다. 처음엔 관례적이고 형식적인 행사가 아닌가 싶었는데,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주교님은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본당을 순방하시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정과 병원을 찾아다니셨다. 내가 손님이라고 여러 행사에 데려가 주시기도 했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떠나기 며칠 전 몇몇 사제들에게 소감을 밝혔다. “교회의 학문과 전통은 여전히 유럽에서 배울 게 많겠지만, 교회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케랄라에서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랬더니 교황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2014년 짜바라(Chavara) 신부의 시성식 때 교황님은 케랄라 교회가 사도직 활동과 신앙 증언에 정진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명하시며, “바로 이렇게 계속해 주십시오.” 격려하셨던 것이다.

교구 신학교에 방문해서 신학생들에게도 같은 소감을 말하고 교황님의 말씀을 꺼냈다. 신학생들은 수줍어하면서도 자부심이 엿보이는 표정으로 한국 교회는 어떤지 물었고, 우리도 그런 격려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답변했다. 시리아어로 주님의 기도를 노래 부르며 환대해 준 그들에게 “난 니”(감사합니다)라고 밝게 인사했다.


(노우재 신부/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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