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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철이 들겠습니까 (장수백 신부 / 원주교구)
   기쁨과희망   2018-07-09 11:30:53 , 조회 : 52 , 추천 : 14



서품을 받고 처음에 저는, 사제는 신자들을, 가르쳐야 하는 사람들로 알았습니다. 신학생 때의 각종 학문은 신자들을 가르칠 때만 필요한 학문으로 알았던 거죠. 오만한 신부였습니다. 신학은 신부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윽박지르며 살았고, 강요하며 살았습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웠습니다. 그렇게 해야 제가 신부로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보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본당을 거치면서 이제 저도 세월을 먹었습니다. 신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들도 인생 학습을 충분히 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도 때론 저만큼 아프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더 아픈 일이 많다는 것을…. 그들도 자신들의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해 늘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는 것을…. 부모로서 한 가정을 이끌어 가면서 온갖 비바람을 맞으며 싸우고 있다는 것을….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매주 성당에 나오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깊어지는 주름만큼 삶의 깊이도 그 만큼 깊어진다는 것을….

어느 신부님이 그러더군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제 나이 때 제 나이에 맞는 생각만 하고 살아도 성공이라고요. 철이 덜 들었다 생각했습니다만…. 그 말씀을 들으니 용기가 났습니다.

더 연세가 깊으신 분들이 보면 웃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저의 생각입니다. “신자들은 가르침의 대상이 아니다. 신자들은 나눔의 대상이다. 내가 주고 나도 받는 나눔의 대상이다.”
더 나이가 들면 이렇게 바뀔 수도 있겠습니다. “신자들은 스승이다. 배움의 대상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훨씬 더 경험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지나봐야 하겠습니다.

우스갯소리로 80이 넘으면 산 놈이나 죽은 놈이나 똑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삶의 경계와 죽음의 경계가 서로 희미해진다는 말이겠죠. 그만큼 깊어진다는 의미로 알아듣습니다. 아마도 그때쯤 되면 신부와 신자의 경계도 희미해질 겁니다. 풍파를 이겨낸 깊은 주름을 지닌 한 인간들로서 서로 마주보겠죠. 한 생을 한 신앙으로 살아온 동지 같은 정이 묻어날 것입니다.

낙엽이 떨어져 옆에만 있어줘도, 고마운 마음이 우러날 때입니다. 신부로서 욕심 없이 잘 늙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때가 기대됩니다.


장수백 신부 / 원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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