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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좋은가...


   

“길을 묻다”... (백남해 신부/ 마산교구)
   기쁨과희망   2015-10-13 14:06:07 , 조회 : 447 , 추천 : 110


   1777년 개혁군주라 불리는 정조 원년, 조선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대왕의 치세로 중흥 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조에게 주어진 24년여의 시간은 짧기만 했습니다. 조선의 어두운 미래를 예감케 하는 듯 세계사는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중국은 건륭제 초기 집권의 번성기를 지나 점점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영국은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었으며, 프랑스는 대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어 갈 때입니다. 또한 신생국 미국의 독립 선언과 전쟁으로 세계사는 말그대로 격동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해 겨울, 경기도 여주군에 위치한 “주어사”에 젊은 선비들이 하나 둘 모여 듭니다. 먼 길을 오느라 행색은 초라했지만 눈빛은 형형하였습니다.

‘격동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하는가?’하는 고민은 시대와 장소를 뛰어 넘어 모든 지식인들이 가지는 주제입니다. 인류사를 관통하는 진리를 찾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열정의 선비들이 공부한 것은 그 시대의 주류인 유교적인 것이었으나 ‘한역서학서’를 통한 천주교 교리의 연구도 이루어집니다.

이후 “천진암” 등에서 이와 유사한 내용의 강학이 계속되어 권철신, 정약전, 이벽 등은 천주교 신앙운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 결과 선교사 없이 스스로 신앙을 받아들인, 세계 교회사에 유일한 한국천주교회사가 시작 됩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한국 가톨릭은 격동의 시대를 열어줄 새로운 빛을 찾던 이들에게서 시작 됩니다. 이 시대 가톨릭 교리는 세상을 바꾸는 혁명보다 무서운 새로운 사상이었습니다.

실제로 복자윤지충(바오로)은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당하자 어머니의 유언대로 유교식 상장의 예를 쓰지 않고 조문을 받지 않았으며, 로마 가톨릭 예식으로 장례를 치릅니다. 국가의 근간이 되는 유교식 관혼상제의 나라에서 이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목숨을 거는 것이며, 국가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후 가톨릭은 근 100여 년간 박해를 받으며 1만 여명의 순교자를 봉헌합니다.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국천주교의 시작은 혁명보다 무서운 세상을 뒤엎는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지금 한국가톨릭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갈길 잃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톨릭 스스로도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돈과 권력과 알량한 지식을 길 삼아 하느님께 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스스로의 권위에 도취 되어서.

백남해 신부/ 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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