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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좋은가...


   

기도, 사랑, 기쁨... (노우재 신부 / 부산교구)
   기쁨과희망   2016-09-09 12:00:36 , 조회 : 415 , 추천 : 71


첫 서원식에 갔다. 가난, 정결, 순명 말고도 한 가지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서원하는 수도회였다. 수련소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빈민지역 한가운데 셋집을 마련하여 정갈하게 꾸민 곳이었다. 우리 신학교에서 가까운데도 나는 그런 지역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알고 보니 피난시절부터 사람들이 모여와 머물렀던 곳이고, 천주교 아파트라 하는 낡고 허름한 긴 건물도 있었다. 청년들은 떠나려 하고 병들고 가난한 어르신들만 남은 거기, 골목 깊숙이 자리한 수련소는 찾기조차 어려웠다.

소박하고 단순한 조그만 경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미사를 드린 후, 뒷마당에 모셔진 성모님 앞에서 잠시 기도했다. 가난은 교회 구성원들 사이 추상화, 사변화된 현실인데, 가난한 이는 본당 안에서도 어색하기만 한데, 가난개념은 신학교육에서도 내팽개쳐져 있는데, 여기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었다. 가난을 서약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서원하는 이들이 온유하고도 또 기쁘게 방긋방긋 웃으며 살아가는 양성의 자리, 영성의 힘이 강하게 감돌았다.

여름방학 동안 수도회의 본원을 방문했다. 기도를 심화해 보시려면 저희들 사막피정에 참여해 보세요, 이 초대에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사실 나는 이분들의 가난한 삶의 방식에 관심이 더 많았는데, 이분들은 마치 가난은 아무것도 아닌 양 기도를 우선적으로 말했다. 청년들을 위한 기도학교에서 진지하고도 차분한 침묵을 보며 그 초대에 쉽게 응할 수 있었다. 흠 많은 인간본성은 가난을 싫어한다. 정결과 순명도 마찬가지다. 어디에 가도 돈, 음식, 건강, 취미이야기와 뒷담화가 빠지지 않는다. 가난과 가난한 이를 사랑하는 것은 본성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곳 본원은 참으로 기도가 중심이었다. 성전은 종일 사람들로 가득했고, 그 말하기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침묵하며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오랜 유학생활 동안 그 나라 사람들의 그렇게도 고요한 모습 본 적이 없었는데 놀라웠다. 설립자 안드레아 가스파리노 신부님은 기도의 여러 단계를 말씀하신다. 먼저 주님 앞에 넋두리하며 혼자 말하고, 다음에는 어느 정도 주님과 함께 말하고, 그 다음에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전념하고, 그러고 나서는 주님께 응답하며 자기 비참함을 알고 그분께 의탁한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사제들의 희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직접 피정을 인도하시며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자비(misericordia)를 받는 곳은 바로 우리의 비참함(miseria)입니다, 비밀스럽게 감춰진 그 비참함을 찾아내도록 은총을 청합시다. 과연 비참함을 의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주님께 자비를 청하고 의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자체가 또 기도를 통해 간청해야 할 은총이다. 주님의 자비를 입으면서 우리는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찾아가는 자비로운 사람, 기쁨 가득한 복음 선포자가 될 수 있다.

나의 비참함이 또렷하게 인식되었다. 그것은 사랑부족이었다. 비참한 현실에 마음도 어두워졌다. 그런데 교황님의 말씀, 안드레아 신부님의 가르침이 힘차게 작용했고, 관상과 선교에 헌신하는 신앙공동체의 기도와 격려가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주님께 비로소 자비를 청할 수 있었고, 이웃들에게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간청할 수도 있었다.

성전 밖에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아담한 종이 세 개 있었는데, 그 이름이 각각 기도, 사랑, 기쁨이었다. 주님은 부르신다. 기도하라고, 사랑을 실천하라고, 기쁨의 봉사자가 되라고 부르신다. 그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는 이들을 만나서 기뻤다.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청할 수 있어 감사했다. 아, 그 수도회의 이름은 샤를 드 후코 관상선교회이다.

(노우재 신부 / 부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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