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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좋은가...


   

길 위의 성사(이동훈(프란치스코) 신부/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전담)
   기쁨과희망   2018-10-08 11:22:46 , 조회 : 69 , 추천 : 4


  

사회적 이슈가 있는 전국 각지의 거리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거리 미사를 염려하는 이들이 있다. 미사가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고, 미사를 거룩한 장소(성당, 경당)가 아닌 세속의 한복판인 거리에서 거행함으로써 성사의 거룩함이 훼손된다는 이유다. 정치는 모든 이들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에, 특히 하느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는 정치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또 거룩한 장소가 아닌 곳에서 성사를 거행하면 그 거룩함이 훼손된다는 염려는 경건하고 독실한 신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우려일 수도 있으나, 다시 생각하면 오히려 성사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약한 신심 혹은 불신앙의 표출로 여겨진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궁할 요량이었는데,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미처 해가 기우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날이 너무 어두워 궁궐까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충직한 신하들은 애가 탔다. 왕이 말했다. “저기, 저 민가에서 하루 묵도록 하자.” 신하들은 펄쩍 뛰며 두 팔을 내저었다. 어떻게 전하께서 누추한 여염집에 들 수가 있겠느냐며, 밤길을 재촉해서라도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왕이 말했다.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보이는 표징’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오신 예수님은 ‘그 자체로 성사’(原聖事)이시다. 거룩하신 분이 썩어 없어 질 육신을 취하셔서 세속의 한 가운데에 거처를 마련하셨다(요한 1,14 참조). 하느님이 세상에 오셨다(성사)는 것은 하느님이 속된 분이 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성사를 통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수고와 자연이 일구어낸 세속적인 빵과 포도주가 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몸과 피로 거룩하게 변화한다. 또 여러 성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름, 물, 초 등과 성당 및 성상 등을 구성하는 세속의 재료들 모두는 사제의 축성을 통해 거룩한 것으로 변화된다.

성사가 거룩한 곳에서 집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가 집전되는 곳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던 요르단 강은 원래부터 거룩한 강이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았던 곳이기에 거룩한 성지가 되었다. 최초의 성체성사가 거행되었던 곳도, 거룩한 성당이 아니라 그저 다락방이었다. 예수님을 잃고 낙담한 제자들은 엠마오로 무거운 발걸음을 터벅터벅 옮기며 걸어가는 와중에 예수님을 만나 마음속으로부터 뜨거운 치유를 경험하였다. 예수님의 병자치유 장소도 거룩한 어떤 곳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곳, 특별히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이미 병자성사는 환자가 있는 가정이나 병원에서, 고해성사는 성당 고해소만이 아니라 성당 밖 나무 아래, 자동차 속에서도 거행되고 있으며, 체육관에서조차도 신품성사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혼인성사도 필요한 경우에 교구 직권자는 성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집전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고 있다(교회법 1118조 참조).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에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 그 현장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성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들어가 세상을 성화시킴으로써 하느님의 힘이 성당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창조물에게 적용됨을 선포하는 것이 본성사(本聖事)인 교회의 의무이다.



(이동훈(프란치스코) 신부/ 원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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