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밀밭사이를 지나며..


   

잘 살고 있습니까? (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기쁨과희망   2018-05-17 16:30:19 , 조회 : 110 , 추천 : 24



우기(雨期) 시작을 앞 둔 캄보디아의 4월. 살갗이 타는 듯한 뜨거운 햇살에 저도 몰래 인상이 찡그려지는 날입니다. 다리미가 뿜어내는 증기로 이마가 벌겋게 익어갈 때 쯤, 우리 공방의 막내가 시원한 물을 건네주며 묻습니다. “신부님 한국은 이렇게 안 덥죠?” 눈 내리는 겨울을 상상하는 막내에게 한국도 여름엔 엄청 덥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래도 한국은 부자 나라인데, 더우면 에어컨 켜면 되잖아요. 더운 우리나라에 와서 왜 고생을 하세요.” 위로 반 장난이 반섞인 녀석의 말을 듣자 하니, ‘그러게 왜 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스칩니다.

잘 살고 싶었는데, 참 잘 산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잘 산다’라는 말을 어떤 표현 하나로 똑 부러지게 정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분명한 하나는, ‘자기 자신은 안다’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누구는 몰라도 자기는 압니다. 그래서 자꾸 피하고 싶어지는 지도 모릅니다. 마치 거울 앞에 선 나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너무 똑 같아서 낯선,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흔히 자기 자신은 속일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살다 보니 그 말이 꼭 그렇지 않다라는 걸 깨닫습니다. 가끔 자신을 속이고 삽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자신마저 속이며 살아야하는 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로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 참 잘 살고 싶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선교사가 아닌, 내 자신에게 당당한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일하며 공부했습니다.

앞이 캄캄하던 우리 재봉 공방의 학생들이 이제 자기의 가게도 꾸리고, 미약하지만 졸업생들로 구성된 협동조합도 창립했습니다. 더 가난한 캄보디아의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교복 나눔 사업도 꾸준히 진행해 왔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칭찬은 늘었는데, 정작 제 자신은 거울 속의 제가 낯설어졌습니다.

사제는 사제로서 주어진 직무를 수행할 때, 가장 사제답다라는 단순한 사실을 이제야 되돌아보게 됩니다. 원단을 자르고, 다림질을 하고 옷을 만들며 사는 일도 선교사로서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 자신이 누구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사제가 잘 사는 길은, 성사와 기도 안에 있다는 사실이 지금에야 조금씩 가슴 속에 고이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간간히 찾아오는 미사 부탁이 참 좋습니다. 그곳에서 제의를 입고 예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신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예수 그리스도의 성체를 거양하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잘 살고 싶은 저의 욕심이 조금씩 채워지는 요즘입니다.


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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