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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본당 신자들과 함께 만드는 전례 쇄신 <이재천(프란치스코) 신부 / 인천교구>
   기쁨과희망   2019-05-08 16:11:15 , 조회 : 76 , 추천 : 5




2017년도에는 주교회의에서 미사경본을 새롭게 내고, 교구에서는 전례지침을 만들었다. 그런 분위기가 본당의 미사 전례를 더욱 좋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신자들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전례 지침서를 함께 공부하고, 전례학에 관한 도서를 읽고, 교구에서 하는 전례 교육에 봉사자들을 많이 보내면서 사제와 신자들이 함께 본당 전례 쇄신을 위해 노력했다.

사실 가장 많이 회개해야 할 사람은 사제인 ‘나’ 자신이었다. 전례는 사제의 고유한 영역이기 때문에 사제의 한 마디가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곳이다. 따라서 사제의 기호나 변덕에 따라 얼마든지 전례는 윤색되거나 요약되고 채색되는 일이 많은 법이다. 나도 전례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는 것이 마치 진보적인 것이고, 진보적인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대는 성당의 중심이자, 전례의 중심이고, 그곳은 하느님의 자리이며 가장 거룩한 곳이다. 하지만 나는 그 거룩한 곳을 본당 행사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옮기거나 치웠고, 강론을 하면서 신자들을 야단치기도 하고, 때로는 제대를 손으로 치기도 했다. 제대가 성당의 가운데 있어서 신자들이 잘 보인다는 이유로 자기중심적인 모습으로 큰소리치며 제대에서 강론을 했다. 하지만 제대가 성당의 중앙에 있는 것은 전례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이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지, 사제 중심이라는 것이 절대 아닌 데도 말이다.

시작과 마침예식을 따로 마련된 주례석에서 하고, 말씀의 전례는 독경대에서 함으로써 성찬의 전례 외에는 제대로부터 빗겨 서 있으라는 것이다. 성찬의 전례만 조심스럽게 제대에 가서 최대한 겸손한 자세와 마음으로 임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사 경본에는 ‘허리를 숙이라’는 지시문이 많고, ‘가슴을 쳐라’ ‘하늘을 우러러 보라’ 등의 말씀들이 많이 있는 것임을 새롭게 알았다.

미사 중에서 반드시 성가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곳이 두 개가 있다고 전례학에서 말하고 있다. 바로 성찬기도문 중에 있는 ‘신앙의 신비여’와 ‘마침 영광송’(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멘)이다. 성찬예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변화 후 환호인 ‘신앙의 신비여’의 중요성과 성찬기도문을 마감하면서 바치는 ‘마침 영광송’은 미사 전례에서 가장 힘차게 고백되어야 하는 것인 줄은 미처 몰랐다(신학교 다닐 때, 공부 좀 할 껄…).

영성체 시간에 성체성가보다 중요한 것은 “영성체 자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성체성가를 부르기보다는 성체를 정성스럽게 모시는 것에 집중하라는 지침이 있다. 그래서 반주자가 제일 먼저 나와서 영성체를 영하고 신자들이 영성체를 모시고 묵상하는 동안 성체성가를 반주만 하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신자들의 반응이 좋다.
이밖에도 독서자나 예물봉헌자들이 미리미리 준비하지 말고, 제시간에 천천히 움직여서 미사에 참례하는 모든 회중이 기다리는 여백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지침의 내용도 그대로 실천했더니, 미사가 고요하고 침착하게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기다림이 주는 고요함의 여백은 미사의 품격을 높여주는 듯하다.

창미사의 아름다움을 살리기 위해, 교중미사는 그레고리안 창미사로 봉헌하고, 주일 9시 미사는 현대식으로 편곡한 창미사로 바치게 되었고, 평일 미사도 ‘신앙의 신비여’부터는 창미사로 봉헌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창미사는 실제로 그냥 말로 하는 미사보다 길어야 5분 정도밖에 더 길지 않다. 그러나 전례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품위있게 채워지는 느낌이다.

신자들과 2년 가까이 전례 쇄신을 위해 함께 노력해왔더니 이제 미사 전례가 지침에 맞게 자리 잡게 되었다. 지침과 원칙만이 중요하다는 식의 딱딱한 전례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다. 수천 년 신앙공동체 안에 전해 내려오는 전례 지침에 담겨있는 전례 정신을 잘 살리는 것이 살아있는 전례, 아름다운 전례, 신자들뿐만 아니라 사제 자신에게도 생기를 불어넣는 전례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그것이 가장 좋은 전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재천(프란치스코) 신부 / 인천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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