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밀밭사이를 지나며..


   

여기가 바로 거기입니다!...(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기쁨과희망   2016-10-12 17:08:00 , 조회 : 431 , 추천 : 70


신학생 때의 일입니다. 1년간의 선교실습을 위해 전기조차 없던 전형적인 캄보디아 시골 마을에 있었습니다. 오전에는 마을 사람들의 논일이나 밭일을 거들고, 오후엔 조그만 성당 유치원에서 마을 청소년들에게 영어나 컴퓨터를 가르치며 지냈습니다.

뜨거운 여름에 지쳐 허덕거리던 어느 날, 하루 종일 미열이 있더니 저녁이 되자 더위를 먹은 것처럼 몸이 무거워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살면서 그때처럼 긴 밤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몸은 오한으로 떨리고, 온 몸의 관절이 욱신거려 선잠에 들었다 깨며, 그 긴 밤을 보냈습니다.

아침이 되자 유치원 주방 할머니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혹시나 할머니가 걱정하실까 평소처럼 일어나 교실과 화장실을 청소하고 평상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제 얼굴을 살피시더니 어디 안 좋은데 있냐고 물으십니다. “할머니… 저 너무 아파요…” 이 한 말씀을 드리기가 너무 미안했습니다.

가난한 마을이라 괜히 짐이 되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괜찮다는 말씀에도 할머니는 기어이 제 손을 잡아 평판에 누이고 죽을 끓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잠이 든 줄 알았는데 그만 의식을 잃었나 봅니다. 깨어보니 유치원 교실 한편에 놓인 제 야전 침대였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얼음을 사와 몸에 올려주고, 자전거로 한 시간은 족히 가야하는 보건소의 의원을 불러 링거를 놓아주었습니다. 뎅기열에 걸렸답니다. 아주 심한 것은 아니니 푹 쉬면 나을 거랍니다. 그렇게 이틀을 누워 있었습니다.

긴 잠에 깨어 눈을 뜨니 새벽녘이었습니다. 잠시 밤공기를 쐬려 방을 나섰습니다. 그 순간! 저는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았습니다. 캄캄한 밤하늘이 무너져 온 별들이 쏟아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두려움과 황홀함, 겸손과 경외. 그 밤하늘을 보며 저는 알았습니다. 지금 나는 하느님의 심장에 서 있다는 것을. 부끄러움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사실 저는 그 시골마을에 지내며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전기조차 없는 마을, 매일 우물을 퍼 올려 씻어야 하고, 신학생이나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 굳이 이런 곳에 선교사가 필요할까, 왜 하느님은 나를 여기에 보내셨을까 불평불만으로 가득했던 저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하느님은 선교사제로서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세상 어느 곳이든 당신의 숨결이 머무는 곳은 뜨거운 인간의 향기가 넘치고 있음을, 그 곳에 서서 ‘하느님’이라는 복음을 선포하라는 당신의 말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제품을 받고 다시 캄보디아 돌아와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양재 공방을 운영하며 옷 만드는 신부로 살고 있습니다. 다리미나 미싱을 만지며 신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곳에 하느님의 숨결이 뜨겁게 흐르고 있음을 말입니다. 하느님의 중심에서 사랑을 선포하는 일, 그것이면 됐습니다.

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캄보디아 지부 코미소 양재 공방 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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