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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교복천사 이야기 (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기쁨과희망   2017-09-11 11:47:30 , 조회 : 238 , 추천 : 58



안녕하세요. 캄보디아에서 옷을 만들며 살아가는 신부, 이범석 시몬 베드로입니다. 아직도 어떤 분은 ‘옷 만드는 신부’라 인사를 드리면, “에이! 신부가 무슨…”이라며 손사래를 치시기도 합니다. 믿지 못한다기보다 이해가 가지 않으신 거겠죠. 그래서 제가 왜 옷을 만들며 살아가는 신부가 되었는지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자리를 빌었습니다. 아마 제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해 보시면, 하느님께서 저를, 왜 옷 만들며 살아가는 선교사로 부르셨는지 공감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캄보디아의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중순의 어느 날. 조그만 성당의 새벽미사를 도와주고 돌아가는 길에,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학교로 향하는 중학생 또래의 친구들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재잘재잘,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많은 학생들 사이, 유독 한 학생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이 깨끗한 새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데, 그 학생은 얼룩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누런 상의와 색이 빠져 탁해 보이는 바지, 검은 때가 낀 엄지발가락이 삐죽 튀어나온, 고무로 만든 낡은 슬리퍼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곁을 지나며 저도 모르게 “에고… 참… 애 좀 깨끗하게 입혀서 보내지…”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머릿속이 번쩍이며 모든 재잘거림이 웅장한 침묵으로 변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많은 학생들 속에 함께 걷고 있는, 또 다른 누런 교복을 입은, 여러 학생들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이런” 탄식이 절로 나왔습니다. 이건 지저분한 게 아니라, 가난한 것이었습니다. 깨끗하게 입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고, 예쁘고 깨끗한 모습에 눈이 팔려, 이웃이요 형제라 부르는 가난한 사람들을 낮추어 보고 말았습니다. 부끄러웠지만 그 날 저는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어떻게 쓰고자 하시는지를. 그러고는 결심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의 학생들에게 가장 예쁘고 좋은 교복을 입혀주자. 지저분하고 색이 바랜 교복 때문에 그들을 세상 속에 묻히게 하지 말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가난한 이웃들의 친구가 되기 위해,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무언가를 채워주는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옷을 만들며 살기를 다짐한 지 5년이 지났습니다. 최고의 옷을 만들기 위해, 한국의 기술을 공부하고 수백 장의 샘플을 만들었습니다. 많은 실수와 실패 끝에 우리 공방은 캄보디아 학생들에게 최적화된, 자타공인 제일 좋은 교복 상품을 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옷을 가난한 학생들에게 입혀 주고 싶어서 ‘교복천사’라는 사업도 시작했습니다. 1004명의 가난한 친구들과 1004명의 교복 기증자를 이어주는 사업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재봉반의 졸업들로 구성된 ‘니싸이’(인연)라는 교복 생산 협동조합도 만들었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인연이 닿는다면 예쁘고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니싸이’(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작은 인연으로 시작한 일이 이제 걸음마를 내딛습니다. 하느님께서 진정 나를 이렇게 쓰고자 하시는 걸까 불안하기도 했지만, 순명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제가 왜 옷을 만들며 살아가는 신부가 되었는지를.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또 그렇게 묵묵히 걸어가려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비추는 좋은 인연들이 우리 캄보디아의 가난한 학생들과 잘 맺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면 여기 홈페이지에 한 번 들려주세요(www.교복천사.com).


(이범석 신부 / 한국외방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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