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밀밭사이를 지나며..


   

오, 복된 도둑이여! (김연준 신부 / 광주교구)
   기쁨과희망   2018-02-07 13:10:19 , 조회 : 182 , 추천 : 22



소록도 보좌신부 때의 일입니다. 서울대교구 면목동성당으로 사순피정 강의를 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명해서가
아니라 유명하신 본당 주임신부님 때문이었습니다. 강길웅 신부님이 강사로 초대를 받으셨는데 몸이 안 좋아져서 제가 대타가 된 것입니다. 저의 목표는 ‘망신만 당하지 말자’였습니다.

강의록을 준비했지만 강의록을 잊어버릴 것을 대비하여 구입한 지 한 달도 안 된 당시 내 보물 1호 노트북까지 준비했습니다. 버스를 타면 될 것을 젊은 혈기로 승용차를 빌려 소록도에서 서울까지 거의 7시간(현재는 5시간 정도 걸림)을 혼자 운전을 하고 갔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너무 피곤해서 몸만 빠져나와 형님 집에 가서 잠을 청하였습니다. 일은 새벽에 터졌습니다. 요란한 벨소리에 수화기를 들었는데 형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신부님 차 안에 중요한 것 두셨나요?” 오~메, 너무 피곤해서 차안에 강의록이 든 가방과 노트북을 나두고 바로 몸만 빠져나와 잠을 청했던 것입니다. 자동차 유리창은 깨져있었고 용돈을 모으고 모아 큰맘 먹고 샀던 노트북과 강의록이 들어있었던 가방이 통째로 사라졌던 것입니다. 하느님 체험은 이제 멘붕에서 시작됩니다.

설렘은 사라지고 강의 한 시간 전 쯤 면목동성당에 도착했습니다. 타는 속도 모르고 본당신부님은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주임신부님께 보험 드는 차원에서 미리 양해를 구했습니다. “오늘 피정 망해도 용서해주십시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신부님께 새벽녘의 일을 알려드렸더니 자신이 당하신 것처럼 당황해 하셨습니다. 약간의 침묵이 흐른 후 신부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본당에 오다가 그런 일을 당했으니 내가 노트북을 사 줄게요.” 신부님은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노트북이 어디 한 두 푼입니까? “아이고 신부님 아닙니다” 했습니다. 사실 그냥 인사로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강의록의 없는 본당의 하루 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강의록이 없으니 개인적인 하느님 체험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무튼 긴 하루 무사히 마치고 사제관에 들어가니 본당 신부님이 저에게 백만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주셨습니다. 우리 본당에 오다가 귀한 노트북을 잃어버렸으니 당신이 사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13년 전 200만 원은 큰 돈이었습니다. 반사적으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하면서도 방정맞게 제 양손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오, 복된 도둑이여!”

잃어버린 노트북은 산 지 한 달 밖에 안 지났지만 새로운 기종이 나오는 바람에 구형이 되어버렸는데 신부님이 주신 돈은 혁신적으로 새로 나온 최신형 노트북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다음 날 뻔뻔스러움으로 무장한 나는 용산 전자상가를 누비며 돌아다녔습니다.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님의 책 <희망의 문턱을 넘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교훈을 얻습니다.”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릅니다. 저는 원죄를 이 도둑사건을 통해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빼앗겼지만 더 큰 것을 얻었습니다.

“오 복된 죄악이여 너로서 위대한 구세주를 얻게 되었도다.” 옛 부활찬송의 가사 입니다. 우리의 고통이 이해 안 되는 것도 많고 억울한 것도 많지만 그것이 인생 역전을 만듭니다. 죽음보다 더 큰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속이 깊고 깊은 면목동 성당 주임신부님의 존함은 ‘김연중’입니다. 그리고 완전 깡촌에서 아니 완전 깡섬(?)에서 서울의 큰 본당에 난생 처음 강의하러 간 신부의 이름은 ‘김연준’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운명적인 만남이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연’자 돌림입니다. 현재 우리 형님은 안식년인데 동생이 너무 바빠서 형님을 못 챙기고 있습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곧 소록도에 형님 쉬실 자리를 마련해야겠습니다.


(김연준 신부 / 광주교구)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8tu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