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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방인이 신부 / 메리놀회)
   기쁨과희망   2018-07-09 11:46:38 , 조회 : 73 , 추천 : 13

평신도협의회가 시작된 지가 올해로 50년이 되었습니다. 11월 18일 평신도주일까지 평신도희년을 지낼 것 입니다. 그 동안에 평신도들의 원래 자리는 어디이며 그 역할에 대한 분석과 평가를 계속할 것입니다. 한국의 평신도는 특별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통계표를 보면 다른 나라의 현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60년 동안 성직자 없이 신앙을 보존하며 순교를 각오할 만큼 적극적으로 활발하게 교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요즘 들어 사회의 영향도 있지만 평신도들이 기를 펴지 못하고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평신도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가끔  ‘잠자는 거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저는 지금 조그마한 공동체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작은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름다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령층이 높고, 몸이 불편한 분들도 많고 사목자로서도 부족한 점도 있으며 생각한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꿈을 계속 꾸어야합니다.

공동체라는 말을 하도 많이 써서 그 의미가 상실되었습니다. 팀과 파트너십이라는 단어는 신학에서는 사용되지 않고 사업상의 관계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어를 교회에서 도입하여 사용한다면 새로운 시야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현재 협조, 교류, 친교, 일치와 같은 말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자극을 주지 않고 높은 이상만 제시합니다. 파트너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면 평등이나 공동책임과 유대 등에 있어 더 실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파트너십 이라는 단어는 성 바오로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사용한 “그리스도의 몸과 지체”라는 표현과 의미가 통합니다.
참 공동체를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단지 함께 일함으로써 좀 더 편하며 효과적이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참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 그 공동체 자체가 사랑과 일치를 전하는 하나의 매체가 되는 것입니다. 의욕과 활기가 생기고 공동체 자체로서 선교가 되고, 성령님이 공동체안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장애물을 없애는 것입니다.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사회 많은 분야에서는 파트너십 없이는 발전이 없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안에 협조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파트너쉽은 보기가 힘들고 우리 교회의 핵심이 되는 사상이 아닙니다.

지난 5월, 교황의 승인을 받은 국제신학위원회의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한 문서에서, 성직자들의 사고방식 때문에 평신도들이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가 교회 안이 아니라, 교회의 변두리에 가게 된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직자들이 모든 결정을 평신도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불장군 식으로 행동한다면 이러한 결과가 생길 것입니다. “평신도들은 교회에 속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로 교회라는 분명한 의식을 지녀야 한다”(평신도 그리스도인). 교회의 법과 전통에 따라 평신도들이 건의, 투표만 할 수 있지, 사목 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평신도들과 나누면 안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명감을 갖기 위해서는 사목자가 혼자 할 수 없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평신도는 사목자의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인도 데레사 성녀께서 하신 말을 공동체 표어로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당신 못하고, 당신은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못합니다. 그러나 함께 하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방인이 신부 / 메리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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