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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함세웅   2015-06-03 23:13:06 , 조회 : 257 , 추천 : 46



연중 제11주일 성경말씀과 교훈

  
 

 제1독서: 에제 17,22-24
    
1. 배경-에제키엘 예언자는 바빌론의 침략으로 유다왕국이 멸망되는 비참한 과정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큰 영향을 받은 에제키엘 예언자는 기원전 591년부터 571년까지 20여년간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늘 제1독서 에제키엘 17장은 바로 유다의 마지막 왕들 여호야킨과 치드키야 등의 불충한 삶을 비유로 설명하고, 이어 유다를 회복시켜주신다는 희망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2. 1) "내가 손수 높은 향백나무의 꼭대기 순을 따서 심으리라. 가장 높은 가지들에서 연한 것을 하나 꺾어 내가 손수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으리라."(에제 17,22)- 메시아사상의 비유말씀입니다. 이 대목에 대해 주석가들은 후기에 첨부된 것으로 추정하면서 바빌론 유배에서의 해방에 대한 암시로 해석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더 크고 먼 후대 곧 메시아 시대와 연계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기필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확신과 선포입니다. 따라서 이 대목은 2사무 7,13의 영원한 보증, 축복과 같이 다윗 왕가를 넘어서서 영원한 메시아 주권에 대한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주님, 우주의 주님께 대한 장엄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2) "높은 나무는 낮추고 낮은 나무는 높이며 푸른 나무는 시들게 하고 시든 나무는 무성하게 하는 이가 나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에제 17,24)-절대자 하느님의 주권과 섭리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 된다는 십자가 구원의 역설적 교훈도 담겨있습니다. 하느님 전능성과 그 앞에서 겸허해야할 인간의 자세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내치시고 보잘 것 없는 이를 높이신다는 성모찬가(루카 1,52)의 해방의 하느님, 민중노래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부익부빈익빈의 자본주의 시대에, 하느님께서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내리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메시아 시대에 이루어질 만민평등과 평화의 실현을 꿈꾸며 하느님께 희망을 둡니다. 절망과 좌절을 넘어 언제나 희망을 간직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다짐합니다.


제2독서: 2코린 5,6-10

  1. 배경-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의 내분과 자신에 대한 험담으로 큰 상처를 받고 1독서와 2독서 등 여러 번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가운데 두통의 편지가 남아있습니다. 오늘 제2독서 2코린토서 5장의 말씀은 어떠한 난관과 역경도 믿음으로 극복하고 있는 바오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목숨을 건 결단으로 오직 그리스도를 최종 목표와 삶의 근거로 삼고 살고 있습니다.

  2.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몸 안에 사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음을 알면서도,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있습니다."(2코린 5,6)- 사람은 누구나 육적 본능을 지니고 있기에 유혹 중에 있으며 때로 하느님을 떠나 살기도 합니다. 그러함에도 바오로는 언제나 이를 극복할 신념과 굳센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굳센 믿음이 육체적 본능을 극복할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이며 은총입니다.

  2)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이 몸으로 한 일에 따라 갚음을 받게 됩니다."(2코린 5,10)- 하느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 있어야 할 인간의 운명은 그 자체가 심판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존재론적으로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는 셈입니다.
때문에 신앙인은 매일 매사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늘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셈 바칠 것을 생각하고 사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성숙된 삶이며 구원의 지름길입니다.


  복    음: 마르 4,26-34

1. 배경- 예수님은 제자들과 백성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는 바로 일상의 얘기입니다. 일상의 사건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깨닫고 하느님을 생각하는 삶이 바로 구원의 삶입니다. 마르코 4장 1-20의 씨 뿌리는 사람과 4,21-25의 등불의 비유에 이어 오늘 겨자씨의 비유 복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2. 1) "하느님 나라는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하고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마르코 24, 26-27)- 생명의 신비입니다. 식물과 동물 그리고 사람은 모두 생명의 존재입니다. 생명의 근원에 대해 묵상하는 그 자체가 기도이며 찬미입니다. 우리는 씨앗의 생명, 씨앗의 신비. 생명의 신비에 대해 때로 깊이 묵상하고 생각해야 합니다.
씨앗의 생명력 안에 바로 하느
님의 신비와 하늘나라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관찰력과 집중력이 바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비법입니다.

  2)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마르코 4,31-32)- 성장의 신비입니다. 신앙인인 우리 자신이 이렇게 성장해야 합니다. 실제로 모태에서 태어난 어린 아기는 작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기는 잘 성장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깨닫고 하느님의 사랑을 터득하고 하느님의 대화자가 되고 친구가 되며 나아가 상속자가 됩니다. 엄청난 성장, 엄청난 진전입니다. 살아있는 자체가 하느님의 은총임을 새삼 깨닫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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