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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16일 연중 제24주일
   함세웅   2015-09-09 13:13:59 , 조회 : 279 , 추천 : 37


연중 24주일 / 성서말씀 묵상


# 제1독서  (이사 50,5-9)

1. 배경- 제1독서 이사야(39-55장) 예언서의 주제는 해방과 구원입니다. 해방과 구원은 충실한 "야훼의 종"을 통해 실현됩니다. 제2이사야서에는 야훼의 종의 노래 네 개가 실려 있습니다. 첫째노래(42,1-9), 둘째노래(49,1-7), 셋째노래(50,4-9), 넷째노래(52,13-53,12)입니다.
이 네 노래가 제2이사야예언서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 세 번째 노래로 그 어떠한 고통과 모욕 중에서도 예언자가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와 사랑을 토로하는 내용입니다.

2.
1)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야50,5-6)- 고난 받는 '야훼의 종'은 삼중의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제2이사야 예언자 자신의 고통, 두 번째는 나라를 빼앗긴 유다민족 공동체 전체의 고통, 세 번째는 바로 훗날의 메시아의 고통, 곧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혀 돌아가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적 의미 등입니다. 제2이사야든, 유다민족 공동체든 그리고 예수님이든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모든 고통과 모욕을 이겨내고 끝까지 인내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2)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자 누구인가?"(이사야50,9)-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는 모든 것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초극합니다. 예언자와 순교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사실 열정의 사도 바오로도 로마서 8,31에서 바로 이러한 사랑과 신뢰를 고백하고 토로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 하겠습니까" 신앙인은 이러한 사람입니다. 철저하게 하느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그 누구를, 그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하느님께 대한 철저한 신뢰는 그 자체가 기쁨이며 용기 그리고 구원과 자유 완전한 해방입니다.


# 제2독서  (야고보 2,14-18)

1. 계속 3주간 제2독서로 야고보서를 묵상합니다. 오늘은 야고보서의 꽃인 "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라는 분명한 말씀을 듣고 묵상합니다.

2.
1)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2,15-16)- 그렇습니다. 마태오 6장1절 이하에서 확인하듯 그리스도인의 첫째 실천덕목은 자선입니다. 자선이 구체적 실천의 대표덕목입니다. 자선이 바로 믿음의 깊이와 질을 판단하는 결정적 기준입니다. 이웃사랑이란 결국 과연 이웃에게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가로 요약됩니다.

2)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7)- "나더러 주님, 주님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7,21)는 말씀도 같은 뜻입니다. 이 세상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한국의 경우 가톨릭 5백만, 개신교 천여만, 전 세계의 경우, 가톨릭 11억, 그리스정교, 개신교, 성공회 등 6-7억, 전세계 60억 중 ⅓인데 그 중에 과연 실천하는 믿음을 지닌 이들이 얼마나 됩니까? 과연 나는 실천하는 신앙인인가 진지하게 성찰합니다.


# 복 음 (마르코 8,27-35)
1. 오늘의 마르코 복음 8,27-35는 사도들에 대한 예수님의 신앙교육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사도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일상의 삶이 바로 신앙교육의 현장입니다.

2.
1) 예수께서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사람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마르코8,27)- 인생을 나그네 여정이라고 우리는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늘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 길 위에서도 우리는 늘 핵심적 주제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여정 중에"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문을 묻고 계십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일종의 여론조사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네 신문․방송․잡지 소식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여론은 한낱 여론일 뿐 핵심을 찌르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점을 깨우치시며 여론을 능가하는, 여론을 넘어서는 확신과 자세를 지니라고 교육하십니다. 예수님께 대해서도 여론의 여러 평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 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며 구원자, 해방자란 뜻입니다.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잡이이며 존재근거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을 위해 내 전 존재를 걸 수 있습니까? 순교자의 달, 이 9월에 믿음의 의미를 새삼 깊이 묵상합니다.

2)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으시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리라고 가르치기 시작하셨다…그리고 베드로가 안된다고 펄쩍뛰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마르코8,31-33)

- 참으로 깊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여 칭찬받았던 그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 정(情)으로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 안된다고 펄쩍 뛰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매몰차게 아니 무섭게 베드로를 꾸짖으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대표사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사탄'이라고 지적받습니다. 베드로가 사탄이라니,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비록 대표사도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면 그가 바로 사탄입니다. 사실 많은 경우 우리는 하느님의 일은 뒤로 한 채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바로 예수님께 무서운 질책을 받을 '사탄'임을 고백하며 하느님의 일과 구체적 실천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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