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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자, 기도하는 사람 <한창현 모세 신부 / 성바오로수도회>
   기쁨과희망   2020-12-02 15:59:51 , 조회 : 959 , 추천 : 99



  최근에 한국 카르투시오 수도원의 일상을 다루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예고편의 한 장면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 수도사가 눈물을 흘리며 이웃을 돕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이 장면에서 감동과 더불어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분에게 있어서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지가 궁금해졌다. 얼마 후 이 궁금증을 대화의 주제로 꺼내놓았다.

어떤 분께서 “그 수도사는 이미 기도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을 도와주신 겁니다”라고 대답해 주셨다. 그분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기도하는 그 자체로 수도자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보신 것 같다. 이 대화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교회의 수도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코로나19가 지속되고 불안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위안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앙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에 SNS에 수도회 일상을 게시하였다. 소소한 다툼들이 있었지만, 형제라는 이유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우선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 다음으로는 어려움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달렸다.

일상적인 종교 활동이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신앙적인 교류가 중단된 이들에게는 수도자들의 삶이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도자들을 통한 간접 체험이 일상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수도자들은 배려와 존중의 대상이었다. 수도자들은 사도직 활동과 관련된 부분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수도자로서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는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국 교회에서 수도자는 존재 자체로 어느 정도 존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의 수도자들은 이제는 배려와 존중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의 지혜를 나누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하느님께 더욱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을 철저하게 체험해 가는 것이 수도생활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시대에 수도자들은 기도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함을 기꺼이 인정하고 오로지 하느님만을 바라고 보고 나아가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세상에 보여주어야 한다.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수도자들이 자신의 삶을 나누기 위해 특별히 무엇인가를 추가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 수도자들이 기도할 때, 사람들은 수도자 안에서 하느님이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다. 수도자는 기도하는 것만으로 이웃을 돕고 있다는 것을 이미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한창현 모세 신부 / 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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