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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이슈와 일상의 물음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려는 우리들의 생각을 모아봅니다.


   

교회가 인간을 성전(聖殿)으로 삼아야 ...... <정중규 / 베네딕도>
   기쁨과희망   2010-01-07 12:13:54 , 조회 : 2,897 , 추천 : 467

우리 교회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것일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곳에서 기쁨을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일까.
만일 세속적 잣대에 따른 것이라면 스스로 멸망의 문에 들어서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분의 몸에 남아 있는 못 자국을 기억해야 한다. 부활의 빛, 그분께로 가려면 고통의 자갈길을 반드시 밟아가야 한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이 파스카의 신비이다. 교회가 고통을 내던지려 해서 안 되는 까닭이다. 오히려 둘레의 것까지 기꺼이 껴안으려할 때, 참된 그리스도 예수의 교회가 될 것이다.

그것은 고통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한없는 사랑 때문에 그 어떤 고통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측은지심의 발로이다. 고통에 처한 삶의 상황이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생제도(衆生濟度)를 위해 성불(成佛)마저 유예한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마음에서 고통을 껴안는 사랑의 아름다움을 본다. 아니 하늘나라를 오게 하기 위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삶에 함께하며 한없는 사랑을 쏟으시다 끝내는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고 그들에 대한 사랑을 당신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삼기까지 하셨던(마태 25,40) 그분의 삶 그 마음을 보라.

진정 예수 마음이 교회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함께하고 하나 될 수 있는 길도 그 마음을 잃지 않을 때만 가능하다. 그 마음을 잃어 사랑에 까막눈이 될 때 교회가 세상에 존재할 이유와 구원의 도구로서 내세울 마땅한 역할이란 더 이상 없다.

그분의 마음처럼 교회가 세상 구원을 위해 애끊지 않을 때, 고통의 상황 앞에서 연민으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 않을 때,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않을 때, 오히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 부족함과 가난을 모르는 교회, 세상의 고통에 함께 할 동정(compassion)과 공감(sympathy)의 가슴이 없는 차가운 교회, 그분께서 몸소 걸어가신 파스카의 길을 걷지 않아 부활을 모르는 교회, 그리하여 부활이 없는 교회, 부활을 거부하는 교회, 그런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은 교회는 세상의 모든 것을 복음의 빛으로 밝혀줄 의무가 있다고 한다(4항). 그러나 그에 앞서 먼저 그분의 그 마음을 지닐 것을 요구한다.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1항)인 까닭이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인간을 성전(聖殿)으로 삼아야 할 때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것이야말로 신성한 빛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으리니, 바로 그곳을 교회로 삼아 거기에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 교회는 하느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사람을 온전히 섬겨야 한다.

교회는 천상예배를 올곧게 바치기 위해 지상예배를 올곧게 바쳐야 한다. 교회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옷을 입히려들기에 앞서 세상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 교회는 슬픔과 번뇌의 땅에서 기쁨과 희망의 열매를 일구어내면서, 슬픔이 기쁨으로 번뇌가 희망으로 바뀔 그날이 올 때까지 어미의 심정으로 깊고 오랜 산고의 과정을 겪어나가야 할 것이다.

<정중규/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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