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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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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제5권 - 통권 제40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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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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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9 11:26:44 , 조회 :
2,240 , 추천 :
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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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원의 가치는?
4월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날 수업시간에 나는 한 학생에게 요한바오로 2세의 장례식과 관련된 교훈과 느낌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 학생은 29세의 만학도로 중간시험을 잘 치루지 못해 떨떠름했던 처지였든지 투박하게 대답했습니다. “텔레비전를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인내롭게 유도했습니다. “어쨌든 교황의 선종 소식에 대해서는 뭔가 들었을텐데 들은 대로 본 대로 느낀 대로 몇 가지 얘기할 수는 있겠지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시작 했습니다. “사실 저는 교황 서거 소식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저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학교 공부가 끝나면 곧 밤일을 해야 하는데, 어느 날 저는 찜질방에 가서 잠을 자려는데 누가 TV를 크게 틀었어요. 잠 좀 자려는데 시끄러워 엎치락덮치락 하는데 누가 한 마디 하더군요. ‘아니 저 사람이 뭔데 이렇게 야단법석이야!’ 잠이나 자게 TV 소리나 줄여주시오” 이 때 학생들은 “와!” 하고 웃었습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학생에게 무슨 말을 해야 좋을까 하고 궁리하면서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나는 그 학생에게 “어쨌든 한 사람의 죽음이 전세계적 사건, 곧 보편적 사건이 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를 한 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없을까요?” 라고 다시 인내롭게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이어 한마디 던졌습니다. “저는 경영학과 학생으로 한 마디 하겠습니다. 어쨌든 사람은 살아서든 죽어서든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최고입니다. 결국 돈과 권력이 모두입니다.” 학생들은 “와!”하고 또 웃었습니다. 대화의 핵심이 자꾸 빗나가니 어이없었지만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주소, 젊은이들의 현주소이니 말입니다.
다시 나는 인내심을 발휘하여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렇지요.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힘으로도 안 되는 것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인도의 데레사 수녀가 무슨 큰 권력과 힘이 있어서 온 세계를 움직였을까요” 그랬더니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데레사 수녀는 1918년생(실제로는 1910년 출생인데, 이 학생은 1918년으로 잘못 알고도 확신을 갖고 얘기했습니다.) 유고 출신이며 수도자로서 한평생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헌신한 모범적 신앙인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임을 언급하면서 데레사 수녀를 극찬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너무도 신기했습니다. 그는 이어 “어쨌든 데레사 수녀에게도 매력이 있었습니다. 매력, 결국 그것도 힘이 아닙니까?” 하고 말을 맺었습니다. 학생들은 “와!” 하고 또 웃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포착하고 “학생, 졸업한 후에 어떤 일에 종사하고 싶습니까? 혹시 연예인, 개그맨인가요?”하고 다그쳐 물었다. 그는 “아닙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학생은 웃지도 않고 많은 이들을 웃기는 재주가 있으니 틀림없이 개그맨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능력입니다. 그것을 잘 살리며 사세요.
그런데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종일관 웃기기만 하면 참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습니다. 참 메시지가 전달되기 위해서는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는데 시험지 마지막에 언급한 학생 개인의 신상에 관한 내용을 공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얘기해 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나는 말했습니다. 그는 시험 문제에 제대로 대답을 쓰지 못해 나에게 편지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적나라하게 기술했습니다. 사실 나는 그 내용을 공개하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좀 망설이다가 내가 계속 재촉하니까 마지못해 응하는 태도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사실 저는 시험을 제대로 치루지 못했습니다. 중간고사는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타난 종교사회관, 인간관, 신관, 세계관을 쓰라고 했지만 그 분량이 엄청나서 제대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어쨌든지 명작이니 내용은 좋은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명작을 많이 읽으세요!” 여전히 삐딱한 설명에 학생들은 계속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했습니다. “사실 저는 네 식구를 봉양해야 합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저는 학원에 가서 중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칩니다. 어느 날은 밤 1시까지도 학원에서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저는 보통 하루에 4-5시간 밖에 잘 시간이 없습니다. 제 전공 점수는 C가 대부분이고 가끔 D도 있습니다. 결국 CD인 셈이지요”
이렇게 웃기던 그가 이제는 어투를 바꾸어 진지하게 뼈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에게 꼭 한마디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토론도 하고, 미팅도 하고 싶고, 여가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친구들 하고 어울려 학교 캠퍼스에서 젊음을 만끽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일을 해야 합니다. 저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옆을 바라볼 시간도 없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단돈 천 원이 없어 밥을 굶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천 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굶는 사람에게는 천 원은 엄청난 돈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부모를 만나 행복합니다. 그러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시어 천 원도 없어 고생하고 굶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숙연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웃고 있던 학생들이 이제는 그 누구도 웃지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나는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만일 이 학생이 자신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은 아마 이 학생을 그저 삐딱하게 웃기는 분으로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학생이 여러분을 웃기는 그 이면에는 이러한 아픔과 절규 그리고 진지함이 있습니다. 이 모두를 연계해서 생각하면 참으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에게는 다양한 면이 있습니다.”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한 여학생이 질문했습니다. “선배님, 영어교사이니까 묻고 싶은데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 주세요!”
숙연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은 질문이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고 난 뒤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글쎄, 이렇게 말씀드리지요. 산속에 토끼와 여우가 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여우가 토끼보다는 더 잘 뜁니다. 그런데 여우가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토끼는 재빨리 피해 달아납니다. 그 뒤를 여우가 쫓지만 결국 여우는 토기를 잡지 못합니다. 더 잘 뛰는 여우가 토끼를 붙잡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토끼는 붙잡히면죽습니다. 생존이 걸려 있으니 토끼는 최선을 다해 그야말로 죽어라고 뜁니다. 반면 여우에게 토끼는 그저 한 끼니의 먹이감일 뿐입니다. 한 끼니의 먹이를 위해 뛰는 여우와 목숨을 걸고 뛰는 토끼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토끼처럼 생존을 걸고 뛰고 있을 뿐 입니다.” 어색한 질문에 너무도 진지한 대답이었던지 교실 분위기는 다시 숙연해졌습니다.
그날 나는 교황제도에 대한 역사적 진전과정을 설명하면서 누구에게나 순기능, 역기능, 장단점이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단돈 천 원이 없어 허덕이는 이웃이 있는 우리의 현실을 새삼 생각하며 보장된 삶을 살고 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잠시나마 깊이 생각했습니다. 신부님들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더욱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5년 5월 8일 주님 승천 대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후원회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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