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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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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제4권-통권 46권 - 정경모 선생님 방문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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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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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0 10:46:01 , 조회 :
2,297 , 추천 :
3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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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모 선생님 방문기
저는 지난 2월 17-20일 사이에 일본 동경을 방문했었습니다. “한일우정의 잔치”의 동경 모임과 한국민주화운동 자료수집위원 간담회 등에 참석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3박 4일 동안 비록 부분적이지만 일본문화를 새롭게 체험하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며 특히 재일동포의 삶과 아픔을 생각하며 남북의 일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2월 19일 주일 아침에 저는 두 분의 교우 실무자와 함께 호텔방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요꼬하마 근처에 사시는 정경모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 우리 일행은 5명이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은 83세로 다리가 좀 불편하셨지만 아직도 원고를 쓰고 계시며, 민족의 문제와 통일을 고민하는 대단한 학자이며 사상가이셨습니다. 더구나 황석영 씨의 <장길산>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출판 준비중인데, 황석영 씨가 소설을 쓴 기간이 10년인데 정경모 선생님이 그 책을 번역하는 데에는 11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번역은 재창조라 했는데 참으로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남한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1989년 4월 문익환 목사님과 함께 북한에 가셔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통일을 위한 선언문을 발표케 한 실무 주역이었습니다.
그 일로 故 문익환 목사님은 3년이상 옥고를 치루시고 1994년 1월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은 자기는 일본에 머물러 있고 문익환 목사님은 감옥에 갇혀 계신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이 되어 그 뒤에는 더욱 열심히 남북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노력하셨답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함께한 ‘6·15남북공동선언’은 바로 1989년의 문익환·김일성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긍지를 갖고 계셨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은 19세 때인 1943년경에 동경에 유학 가 일본인 하숙집에 머물면서 공부하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1950년 6월 25일의 비극, 곧 한국전쟁이 터졌습니다.
이때 당시 이승만 정부는 미국 유학생들을 모집하여 군복무 대신 동경에 있는 맥아더 사령부 통역관으로 근무케 했습니다. 이때 문익환·박형규 목사님 등과 만났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분들은 미국파 유학생, 미국파 장학생들인 셈인데 미국의 이중적 외교정책을 알고, 이들은 후에 모두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미국을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자가 된 셈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끝나고 휴전이 된 후, 선생님은 계속 동경에 머물면서 재일동포의 권익을 위해 일본과 싸우고, 남북의 일치를 위해 미국과 싸우면서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확신하고 통일운동에 더욱 투신하셨습니다.
또한 7,8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 때에는 남한의 민주화를 위해 더욱 헌신하셨고 특히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에는 김대중 구명운동을 주도하며 박정희 유신타파를 위해 온힘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문익환 목사님을 북한에 모시고 간 이유 때문에 아직까지 한국에는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19세의 청년으로 조국을 떠나 일본, 미국 등 외국을 오가며 오직 조국만을 생각했던 정경모 선생님은 이제 83세가 되셨는데, 그렇게 그리던 조국땅을 밟지 못하시고 돌아가실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에 꼭 오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 선생님은 “글쎄, 저는 고향이 꼭 장소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고향에 가야 친구도 없고, 문익환 목사님도 안계시고, 결국 아는 분들이 없잖아요.
저는 고향을 장소라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고 ‘때’ 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그 시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그때와 그 시간이 바로 고향이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고향이란 장소가 아닌 ‘때’,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로 돌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때문에 저는 비록 죽어서 제 몸이 이 일본 땅에 묻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고향이라는 ‘그때’를 마음에 품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는 모두 가슴이 찡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고향의 의미, ‘때’의 교훈>
사실 우리에게는 모두 동심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동심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곧 고향을 찾는 마음인데, 그 때 고향은 꼭 내가 태어난 곳, 내가 자라던 곳, 내가 살던 땅만이 아니라 내가 태어난 때, 내가 깨달았던 때, 내가 지냈던 그때, 말하자면 가장 순수했던 때입니다.
또한 하느님과 만났던 때, 곧 우리에게는 세례 때, 신학생 시절, 사제서품 때이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성경에서 말하는 때 곧 카이로스(Kairos)를 생각했고 때문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말씀의 깊은 뜻을 새삼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도 장소가 아닌 시간의 개념, 때의 개념으로 파악해야 할 중요한 뜻임을 깨달았습니다. 회개의 사순절, 수난과 부활, 이 모든 구원의 신비가 바로 때의 개념에서 파악되어야 할 가치임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경모 선생님이 동경에서 미국으로 유학 갈 때 그 하숙집의 여주인이 “자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딸이 기다릴걸쎄” 하셨답니다. 사실 5년 후에 한국전쟁 때문에 정경모 선생님은 동경에 오게 되었는데 과연 그 하숙집의 딸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정경모 선생님은 일본 여인과 과연 결혼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문익환 목사님이 야단을 치시면서 “야, 이 사람아, 자네가 뭔데, 자네를 위해 5년을 기다린 여인 앞에서 망설인단 말인가? 그 여인과 결혼하는 것은 의무일쎄”하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님의 주례로 그 일본 여인과 결혼하여 오늘날까지, 그가 19세 때에 하숙했던 바로 그 집에서 아들 둘을 낳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일본 부인은 스스로 일본국적을 포기하고 한국국적을 취득하여 이제는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그 말을 듣고 참으로 그 부인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인은 일본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일체의 특권을 포기하고 연금도 받지 않은 채 가난하지만 기쁘고 행복하게 살고 계십니다.
부인은 저희에게 차와 점심 대접을 해 주시면서 늘 뒷전으로 피하셨고 사진 찍는 것도 사양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 부인의 손을 잡고 국경과 종족을 넘어선 인간의 끈끈한 사랑과 연대감을 확인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진실한 여인이었습니다. 할머니인 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10대 소녀의 순수함을 또한 확인했습니다.
이렇게 옛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정경모 선생님께 “선생님, 사모님께서 일본국적을 그대로 갖게 하시지, 이곳 일본땅에 사시면서 구태여 부인의 국적까지 바꾸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고 말씀드렸더니 정 선생님께서는 “아닙니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 사람이 스스로 혼자 결단한 것입니다. 저는 아무 요구도 안 했습니다” 하고 대답 하셨습니다.
새삼 그 부인이 정 선생님보다 더욱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남편에 그 부인인지 아니면 그 부인에 그 남편인지 이 두 분은 참으로 종족과 국경을 넘어선 대단한 분입니다.
세 시간이 지났습니다. 우리는 동경에 있는 YMCA회관에서 다른 모임 계획이 있어, 선생님 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우리 일행이 길모퉁이를 돌아 갈 때까지 그 노인은 계속 손을 흔드셨습니다. 우리 일행도 뒤로 돌아 양손을 높이 흔들면서 존경과 사랑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19세 때 유학길에 올랐던 청년 정경모, 이제 그는 83세의 노인이 되어서도 우리가 잊고 있는 민족의 문제를 고민하며 이국땅 일본에서 일본을 넘어선 한 여인과 함께 자신의 삶을 총결산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대단한 분을 뵙고 그 여운이 너무도 생생하여 우리 일행은 이 체험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신앙인들입니다. 회개의 때, 고난과 죽음의 때, 그리고 부활과 영생의 때를 늘 확신하며 오늘도 그분께서 오실 그때를 기다리며 엠마우스의 두 제자와 같이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빵을 나누며 주님의 현존을 새롭게 체험합니다. 신부님들과 함께 부활의 때를 함께 확인합니다.
이 글은 제가 제기동 중·고등학생들을 위해 기고했고, 본당 게시판에 올렸던 것을 다소 첨삭하여 다시 신부님들께 드리게 됨을 알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6년 3월, 부활절을 앞두고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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