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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다해> 제2권-통권 51권 - 새해 인사드립니다.
   기쁨과희망   2007-01-03 14:41:16 , 조회 : 2,572 , 추천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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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드립니다.

대림 4주일과 성탄, 그리고 성가정축일 주일과 새해 첫날이 바로 이어져 있어 더욱 바빴던 연말이었습니다. 이제 새해를 맞았습니다.

새해 첫날의 다짐과 기도, 그 경건함을 1년 내내 한결같이 간직하고 실천하도록 결심하며 하느님 안에서 사랑하는 벗 그리고 교우 한분 한분을 생각하며 정성껏 사제의 여정을 계속합니다.

새해에는 참으로 우리 모두 할 일이 많습니다.

우선 우리 동창 사제들은 올해가 사제 서품 40주년을 맞는 해이기에 그 감회가 새롭답니다. 동창 44명 가운데 10명은 은퇴했고 또 7명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4명은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어, 33명이 사제로 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교회공동체의 전승 과정, 곧 12사도-사도교부-호교교부로 이어지는 신앙의 계보를 새삼 되새기며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초심과 현재의 상황을 교차시키면서 석양(夕陽)의 교훈과 하산(下山)할 때에 더욱 조심스럽게 걸어야 한다는 등산의 원리를 되새깁니다.

7·80년대에는 예언서의 말씀에 매료되어 자못 열정을 지니고 밤기차를 타면서도 부산, 광주, 대구, 안동, 춘천 등을 누볐었는데 이제는 시대도 바뀌고 체력의 한계 때문에 행동반경도 좁아졌고 그 때문인지 사고의 영역도 오그라들고 있습니다. 쇠퇴이론, 노쇠원리인가 봅니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자연스럽게 전도서와 같은 지혜문학에 더욱 친근함을 느낍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청춘인지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달려가곤 합니다만 자연과 역사 앞에 겸허해야 하는 교훈을 또 깨닫곤 합니다.

지난 성탄 때에는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후원회원과 가족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드리면서 톨스토이 평전을 새로 읽고 그 핵심을 전해드리기도 했습니다.

톨스토이(1828-1910)는 러시아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토스토예프스키와 쌍벽을 이루던 문호였습니다. 김대건 신부님 보다 7년 뒤에 태어났고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바로 그 해에 만 82세로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톨스토이의 생전에 국내적으로는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대원군, 고종, 명성황후, 동학,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을사늑약, 안중근 의사 등 참으로 엄청난 사건이 있었고, 러시아와 유럽에서도 큰일들이 많았던 80여년의 과정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그 80여년의 삶을 “최선을 다해 산 사람”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귀족으로, 소설가로, 신앙인으로, 도덕 설교가로, 종교 비판가로 최선을 다했던 톨스토이는 말년에 러시아정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또한 교황과 로마가톨릭을 너무 비판했던 터에 그의 모든 작품은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1960년대까지는 금서(禁書, Index)로 분류되었었습니다.

참으로 톨스토이는 인도주의 작가이며 위대한 도덕적 설교가, 평화운동가였습니다. 진정한 문인이라면 그는 필연적으로 도덕적 설교가가 되어야 한다고 톨스토이는 역설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진정한 문인은 꼭 평화운동가, 평화실천가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며 그는 과감하게 제국 러시아의 황제 체제, 곧 국가정부 체제에 근원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는 과연 당시 러시아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등 모든 그리스도교가 참으로 예수의 복음을 믿고 따르고 있는가라는 것을 줄기차게 묻고 철저하게 예수님의 가르침에 회귀하도록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톨스토이는 철저한 그리스도인이며 동시에 이상주의자, 무교회 주창론자 등으로 평가되지만 그러함에도 그의 주창은 오늘까지도 우리 모두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결과에 늘 승복하는 섭리의 신앙인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명작 <부활>은 당대의 사회문제, 토지, 권력, 종교, 정치사회 구성 등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결국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정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덤으로 받을 것이다”(마태 6,33)라는 산상수훈의 말씀을 결론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소설을 통해서도 분명히 새로운 가치로 변모된 삶의 양식, 깨달음, 결단, 선택, 실천이 바로 부활임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부활이란 바로 깨달음을 통한 구체적 실천과 변모된 삶에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결론입니다. 톨스토이의 이 교훈을 되새기면서 저는 7·8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성서 말씀을 제 삶의 길잡이로 삼고 있습니다.

2006년은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이 창립 1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지난 10월 30일에는 “한국 가톨릭의 신학 찾기-신앙의 부재, 신학의 부재?” 라는 주제로 제7회 학술대회를 가진 바 있습니다. 이때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발제자 오민환 연구원은 신앙이란 결국 하느님께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명제는 하느님께로부터 연유되지 않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식별하는 일임을 역설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당대 율법학자들에 대해 “사람의 것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치고 있다”(마르 6,7)고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오민환 연구원은 식별력이 없는 믿음은 신앙의 우울증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좋게 말해 우울증이지 그것은 사실 정신병으로 비정상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 비정상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식별력과 분별의식, 곧 끊임없는 성찰과 고민이라는 신학 작업을 통해 건강한 신앙을 지녀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분명한 ‘하느님 체험’, ‘나자렛 예수의 체험’을 지녀야 합니다. 이 체험이 바로 신학의 바탕이며 건강한 믿음의 토대가 됩니다.

또한 두 번째 발제에서 김인국 신부는 “하느님의 이야기, 예수님의 이야기-신앙 언어의 올바른 이해”에서 사제들의 강론과 목사들의 설교에 대해 언급하면서 개신교회의 설교는 “안 들어도 뻔한 소리”이고 우리 사제들의 강론은 “듣고 또 들어도 모르는 소리”가 태반이라고 자조적으로 반성했습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을 말씀으로 정의하면서 말씀의 무한한 창조력과,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신 그 강생의 신비를 고백했습니다. 말씀의 위력은 곧 창조와 변모 그리고 구원의 힘입니다.

사실 우리의 말도 우리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바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정의하면서 그리스도의 선구자적 소명을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미사 때마다 우리가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그에 대해 강론을 덧붙이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말, 우리의 강론이 성서말씀의 연장선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말을 무책임하게 발설함으로써 오히려 하느님 말씀의 본뜻을 훼손하고 있지는 않은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개신교의 유경재 목사는 <기독교 사상>이 주최한 2004년 9월 ‘한국교회의 설교를 말한다’라는 심포지엄 발제에서 한국 개신교의 가장 큰 문제는 신학이 부재하다는 점을 첫째로 꼽았습니다.

신학이 없다는 말은 신관 정립이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신학이 없고 신관 정립이 없는 목회자의 설교가 과연 어떠한지는 자명합니다. 그 구체적 예로서 예수를 잘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이른바 ‘삼박자 구원’과 ‘청부론’(淸富論)을 비판했습니다.

사실 구약성서의 근본은 가난하고 겸손한 ‘아나윔’을 통해 이룩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인데, 이 점을 간과한 채 기복적으로 치닫는 이러한 설교는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제들의 강론과 해설이 이러한 비판 앞에서 과연 신학적이며 성서적인가를 반성해야 합니다.

또한 그는 두 번째로 잘못된 교회론을 지적했습니다. 개신교의 방향이 지나치게 교회 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중심이 무엇 때문에 문제일까 하고 저는 처음에 갸우뚱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우리 가톨릭이 더욱 크게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교계제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는데 생겨난 것은 ‘교회’였다는 신학자들의 지적에 겸허하게 눈길을 두어야 합니다.

교회 중심론이 때로는 ‘하느님 나라’의 신선성과 진정성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겸허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유경재 목사는 1970년대 독재적 경제 성장론과 맞물려 교회의 놀라운 외형적 성장을 이루게 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른바 개인 구원과 교회 성장만을 강조한 나머지, 교회를 세상과 무관한 탈 사회적 집단으로 변모시켜 결국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그 사회적·보편적 구원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잊게 했음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역사의식의 결여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한복판 역사의 현장에 개입하신 분입니다. 출애급의 해방과 예언자 사상이 바로 이를 입증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이 점을 간과한 채 신자들을 예배당 안에 가두어 놓고 심지어는 독재자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인물들이라고 예찬하기까지 했으니 참으로 부끄럽다는 반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가톨릭 사제들의 신관과 신학적 성찰 그리고 하느님 나라와 교회에 대한 인식, 나아가 역사의식 곧 예언자 사명에 대한 인식과 실천은 어떠합니까? 우리도 더욱 깊이 반성하고 뉘우쳐야 합니다.

메츠(J.Metz)가 예수님께 대해 언급한 ‘위험한 기억’의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한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으신 예수님, 그분께 대한 기억은 참으로 처절하고 때로는 우리도 그분과 같이 죽을 수 있다는 매우 위험스러운 일임을 자각하면서 진지하게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으로 주님의 제단에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하고 하느님 나라를 기려야 합니다.

새해를 맞아, 신학을 살고 고민하는 분들이 제기한 신관 정립, 하느님 나라에 대한 바른 인식 그리고 분명한 역사의식을 갖고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이 명제를 다시 가슴깊이 되새겨야 합니다.

2007년 새해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박종철 군의 죽음을 은폐 조작한 불의한 권력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4·13호헌조치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와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전국 각 교구의 500여명의 사제들이 단식에 임했고 대학교수들의 성명 발표가 잇달았습니다.

그리고 5월 18일 명동에서 김승훈 신부님이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사건을 폭로하고, 6월10일 민정당의 노태우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었는데 바로 그날부터, 전국 58시군(市群) 각지에서 민주화를 염원하는 불길이 솟아올랐고, 명동성당에서는 5박6일간의 농성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민주자유를 이룩한 것입니다. 직장인, 회사원, 상인, 중·고교생 등 모든 시민이 함께 한 87년 6월 항쟁은 사실상 4·19혁명의 완결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올해 우리는 제2의 6월항쟁 정신으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의 일치와 화해의 기틀을 마련하며 출애급의 해방 그리고 바빌론 유배에서의 귀환과 기쁨을 재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겨레와 미래를 위해 올해 우리가 하느님께 바치는 가장 아름다운 기도와 제물이 될 것입니다. 새삼 예언자적 소명을 되새깁니다.


2006년 12월 성탄
새해를 앞두고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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