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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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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제4권-통권 53권 - 5월의 고민과 시대적 성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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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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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08 17:34:34 , 조회 :
2,954 , 추천 :
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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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___다_제4권(53).hwp (114.5 KB), Download : 182 |
5월의 고민과 시대적 성찰
5월입니다. 늘 그러하듯 저도 교우들에게 5월 성모성월의 의미를 반복해 전하며
며칠 전에는 지역 꼬미씨움 모임에서 성모신심에 대해 특강도 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교우들에게 성서에 바탕을 둔 성모신심을 강조했습니다.
저의 경우, 성모신심의 진전 과정을 살펴보면, 어린시절에는 풀톤 쉰 주교님의 논리, 곧 창조주 하느님을
건축가나 조각가에 비유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이 거처하실 집과 당신이 머무실 곳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라는 설명에 깊이 수긍했었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가장 완전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음은 분명합니다.
풀톤 쉰 주교님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고 논리적으로 훌륭합니다. 그런데 성서와 신학을 익히고 사목에 임하
면서 성모님께 대해 늘 풀톤 쉰 주교님의 논리만을 반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로마 유학 중 어느 해 성모성월에 구약 교수의 특강을 들으면서 성모신심의 핵심을 파악했으며
이 체험을 기회 있을 때에 신자들과 함께 나누곤 합니다.
마리아론의 핵심을 그는 구약에서 다음의 세 구절을 인용하면서 설명했습니다.
창세 3,15 :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뱀)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이사 7,14 :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표를 보여 주시리니,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미가 5,1-2 : “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작은 고을이 아니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 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 두시리라.”
그 교수는 이 세 구절의 공통점인 “여인”이라는 말마디에 초점을 맞추어 예표적으로 설명했고
그 뒤 성서를 배우면서 시온의 딸, 예루살렘의 딸이란 표현에 담긴 공동체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십계판을 담고 있는 계약의 궤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품으셨던 마리아와의 관계,
그리고 동정녀 잉태에 대한 로핑의 정치사회적 해석에서도 많은 가르침과 교훈을 얻었습니다.
특히 마르코복음 3,31 이하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다 내 어머니이며 형제요
자매이다”라는 말씀에서 성모님이 지닌 혈연과 영적의 이중 모성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성모마리아는
객관적 기준, 곧 영적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기에 마리아의 믿음과 실천이 핵심임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저는 7,80년대 박정희 독재와 전두환 신군부 독재 때에 숱한 어머니들이 자녀와 남편을 감옥에
빼앗긴 채, 길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분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억울한 당사자, 곧 예수
님의 형제자매, 어머니임을 깨닫고 역사 현장의 체험 속에서 성서적 교훈을 더욱 깊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때문에 우리는 모두 특히 80년 5월의 광주를 우리 민족의 십자가라고 아픈 마음으로 노래하고
함께 기도하지 않습니까?
실제로 오늘날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예수님의 길을 걸으며 십자가의 기도를 올릴 때 길거리, 상점, 골목
등을 거쳐 골고타와 무덤으로 향합니다. 우리의 현실 바로 그곳이 십자가의 길임을 새삼 깨닫습니다.
때문에 스리랑카의 A.피어리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타가 바로 전례와 영성 그리고
사회적 투신의 원천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성모님을 관념적으로 이해하면서 성모신심의 핵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레지오마리애 모임의 선서 때 저는 그 긴 기도문을 들으면서 저 나름대로 우리 교우들이 성모신심의
핵심을 깨닫도록 화살기도를 올리곤 합니다. 사실 선서 기도문은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내용인데 어떻게 이 내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여전히 반복되고 있을까 하며 저는 늘 의아해 하고
있으며 제 나름대로 선서 기도문을 압축하여 따로 선서 봉헌기도를 작성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선서문의 시작은 훌륭합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령님을 부르며 기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두 번째 단락은 이른바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께(Per Mariam ad Jesum)라는 마리아 신심의 격언 같은 구절의 주관적 해석으로, 그 내용을 삭제
하든지 또는 전면적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부님들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겠지만 선서문의
두 번째 단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성령)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려고 오셨으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역사하지 않으시고
저희 또한 성모 마리아 없이는 당신을 알아 뵈올 수 없고
사랑할 수도 없음을 아옵니다.
당신은 저희에게 모든 재능과 성덕과 은총을 내려 주시오나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에게,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때에,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만큼,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베풀고 계심을 제가 아옵니다.
또한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수사학적 강조어법이겠지만 이 대목은 성령님의 행업을 오히려 마리아께 종속시키는 신학적
큰 우를 범하는 내용입니다. 이 대목을 다음과 같이 두어 줄로 압축했으면 합니다.
“성령께서는 이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하시려고 오셨으며,
이 쇄신 작업을 성모님께서 가장 훌륭하게 이룩하셨음을 저는 깨닫습니다.
이에 제가 레지오 단원으로서 충실하게 봉사하는 비결은 당신께 완전히 하나 되어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는 것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다음의 내용도 성서와 우리 시대에 맞게 보다 실천적 내용의 기도로 새롭게 작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2007.4. ≪사목≫ 마지막 호가 배달되었습니다. 얼마 전에 ≪사목≫지가 폐간 된다는
소식을 듣고 도대체 주교님들의 사고는 어떠하길래 이런 결정을 내리는가 하고 떨떠름했었는데 드디어 폐간호
가 눈앞에 왔습니다.
잡지 내용을 한눈에 훑어보면서“다시 읽는 사목”이라는 소제목으로 된 진 토마스 신부님의 “복음은 교회 안의
모든 신심의 기준이다”라는 글이 사목 2호, 곧 1967년 8월호의 것인데 이 폐간호 272쪽에 실린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활동단체 지도
성경 연구회를 가질 시간이 없다면 적어도 본당에 있는 가톨릭 액션 그룹들을 건전한 신심으로 인도해야 하는
엄한 의무가 있을 것이다. 이 단체들은 다른 교우뿐 아니라 외교인에게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을 알 수 있겠다. JOC, JAC 같은 단체는 성경 연구가 이미 그 회합의 중심이 되고 있으니 여기서는
특히 레지오마리애의 제도에 대하여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교우들 중에 레지오도 교본을 성서보다 더
잘 아는 이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우리 시대의 흐름뿐 아니라 복음과도 잘 의합되지 못한 점들이
있으니 그러한 종류의 성모신심은 기초가 없는 것으로 현대 세계에서 활동하는 데 역량이 부족하다.
성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성모께 대한 신심보다 천주 성부와 그 아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모님의 신심, 성모님 친히 닦으신 그 신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공의회의 교회헌장에도 아름답게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한 가지 구체적 결론으로서 레지오 주회에서 영적 독서와 훈시를 성경에 의거하자고 권하고 싶다. 이것이 복음 자체와 공의회의 요구이니 다른 지시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40년 전에 이미 수도사제 진 토마스 신부님이 선각자로서 ≪사목≫지에 언급한 이 내용이 교회공동체 현실에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이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기회에 ≪사목≫지 폐간을 우리 사제들이 함께 고민했으면 합니다. 폐간호 228-241쪽에서 심상태 신부님은
그 아픈 마음을 차분하게 글로 표현하면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우리의 몫이며 의무입니다.
저는 1994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미국의 유다인 신학자 Marc Ellis가
우리 사제들에게 제시한 도전의 메시지에서 놀라운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제가 여러 번 이 내용을 소개한 바 있지만 이 기회에 다시 되새깁니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어
“브로커 없는 하느님 나라(The Brockerless Reign of God)를 선포하셨는데, 그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교회공동체 곧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그 안에는 온통 브로커 투성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또한 우리 사제들이 만일 예수의 참된 제자, 진실한 추종자라면 예수님이 선포한 그 하느님 나라 때문에 브로커 투성이의 이 현실적 교회를 당당히 떠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청천벽력과 같은 선언이었는데 우리는 그 당시에 영어로 강의를 들었기에 그 깊은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지나쳤었습니다. 그런데 후에 그의 영어강의 본문(text)를 다시 읽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의 강의가 매우 철저한(radical) 가르침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오늘도 타성에 젖어 안주하고 싶은 저에게 6월민주항쟁 20년 기념과 5·18광주항쟁의 기억
그리고 ≪사목≫지의 폐간을 고민하며 울고 있는 동료·후배 사제들의 처절한 외침이 전달되어
새삼 예수님의 고통, 그 십자가 죽음 그리고 순교자들과 의인들의 희생을 진지한 마음으로 묵상하며
정신을 차립니다.
신부님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기원하면서 5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07년 5월 7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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