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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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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제2권 - 통권 제37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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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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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8 17:51:23 , 조회 :
2,433 , 추천 :
3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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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새해는 을유년(乙酉年), 곧 닭의 해입니다.
70·80년대 유신독재와 신군부 억압의 참혹한 시절에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면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꼭 온다!"라고 외치며 노래했습니다. 은유어법이고 시적 표현이니 긴급조치나 계엄법에 걸릴것도 없고 체제 전복을 꾀한 것도 아니었으니 이 말은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어 모두가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닭의 "꼬끼오!" 소리와 상관없이 새벽은 꼭 오게 마련입니다. 그래도 새벽을 알리는 닭의 소리는 나름대로 큰 뜻이 있습니다. "꼬끼오!"를 듣지 못하면 늦잠을 잘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을유년 새 아침에 우리는 새삼 닭에 얽힌 얘기들을 나누게 됩니다. 성서와 관련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우선 닭이 베드로를 상징하고 나아가 로마가톨릭을 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일에서 예배당과 성당을 구별하는 방법은 종탑 위에 십자가 입니다. 십자가만 있으면 개신교 예배당이고 십자가 위에 닭이 있으면 그것은 로마가톨릭의 성당이랍니다. 제가들은 바로는 1517년 이른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독일 전역에 종교 분쟁의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다음 1-2세기가 흘렀을까요. 겉만 보고 성당인지 예배당인지 구별할 수 없어서 창안한 것이 바로 십자가 위의 닭이었답니다. 교황 중심의 로마가톨릭은 베드로의 우위권을 주창하고 있던 터라, 베드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표시로 닭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수난때의 베드로의 허언장담과 부끄러운 세 번의 배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말을 잘 들어라.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다시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장담하였다.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마태오 26,33-35)
우리 사제들의서품 때에 약속과 다짐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어떠합니까? 베드로의 경우를 다시 성서를 통해 확인해봅니다.
그동안 베드로는 바깥뜰에 앉아 있었는데 여종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베드로는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고 맹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하고 잡아떼었다. 바로 그때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하신 예수의 말씀이 떠올라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마태오 26,69-75)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세 번 뿐 아니라 세 번씩 삼백 번, 아니 삼천 번, 삼만 번……그야말로 그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주님을 배반하지는 않았습니까?
십자가 위의 닭은 분명히 베드로를 연상시키는 로마가톨릭의 상징인데 사실 이 닭은 베드로의 심장을 찌르는 창칼과 같은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야, 너 닭소리 기억나니?"하고 물으시면서 베드로에게 앞으로 항상 더욱 겸허하게 봉사할 것을 당부하고 계신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예수님께서는 똑같이 교황, 주교 그리고 우리 사제들에게도 당부하십니다.
서울 반포성당 꼭대기에도 닭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종탑의 닭은 "꼬끼오!"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베드로 사도와 같이 뉘우치고 울어야 할 우리가 무덤덤한 것은 그 닭과 같이 울지도 않고 또한 우리가 그 때문에 새벽 닭소리를 듣지 못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해는 새삼 닭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더욱 뜻있게 살도록 다짐합니다.
또한 올해는 1945년 일제 탄압에서 해방된 지 60주년 그리고 1935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4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신앙의 귀감이며 교육가, 사상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겨레와 민족을 위해 몸 바치신 안중근 의사의 고귀한 삶과 함께 3·1독립운동의 선조들과 유관순 열사,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순국선열들을 기리며 새해를 뜻 있게 지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선열들께 역사적 빚을 지고 산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진지한 몸과 마음으로 순국선열을 생각하며 2005년 새해에는 순국선열들에 대한 감사와 기억, 묵념의 한해가 되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또한 1965년 한일협정의 주역 박정희는 우리 모두 잘 아는 바와 같이 독립군을 살해한 일왕의 앞잡이 그리고 공산당의 프락치로서 4·19민주혁명의 꽃을 꺾은 반란자입니다. 박정희가 주도한 한일협정은 참으로 부끄럽고 아픈 제2의 을사늑약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뒤 박정희는 영구 집권을 꿈꾸며 유신억압 체제를 세웠다가 결국 김재규 부장에게 사살 당했습니다.
40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과거의 부끄러운 사건을 반복치 않고 남북이 대화하고 평화 공존을 이룩하며 참된 민족공동체를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일제와 굴욕적으로 협약을 맺은 우리는 동족인 북한을 여전히 배제하고 북한에 대해 사랑과 이해를 갖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순국선열에 대한 모욕이며 민족사적으로 큰 죄악입니다.
이제 우리는 해방 60주년 그리고 굴욕적 한일 외고 40주년에서 큰 교훈을 얻어 민족자주통일 정신으로 남북이 화해하고 민족이 하나되도록 간절히 염원하며 기도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으로서 국민의 의무이며 도리입니다.
신부님들께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2005년 새해를 앞두고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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