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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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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제6권-통권 67권 - 세상 한복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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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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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7 15:35:42 , 조회 :
2,422 , 추천 :
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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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한복판에서
9월이면 우리는 신자들과 함께 자동반사적으로 순교자 찬미기도를 올리고 성가를 부르며 순교자들을 노래합니다. 이 기회에 우리는 또한 숱한 익명의 순교자들을 함께 기립니다. 그런데 문득 이 시간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 귓전을 때리고 있습니다.
중무장한 경찰들의 체루탄 속에서 방패와 몽둥이로 맞고 군화발로 짓밟히며 짐승처럼 끌려가는 동지들을 바라보며 청년학생들이 전 존재를 걸고 목청껏 불렀던 이 노래는 바로 의인들을 기리며 찬미하는 민중의 노래, 항전가이기도 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리,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리 산 자여 따르라.”
이제는 5․18광주민중항쟁 공식기념식 등에서 당당하게 부르는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가슴 뭉클한 내용입니다. 사실 이 노래는 저항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 어떤 이들은 이 노래를 몹시 싫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든 싫든 “임을 위한 행진곡”은 시대의 얼을 지니고 있는 시대의 노래, 민중가요입니다.
이러한 민중의 노래를 갖고 있지 못했던 7,80년대, 우리 신자들과 수도자들 그리고 사제들은 서슬 퍼렇던 유신독재와 신군부독재 억압의 시대에 성당에 모여 독재종식과 감옥에 갇힌 이들의 석방, 인권 회복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고, 때로는 세상 한복판으로 걸어나오기도 했습니다.
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르시어 이제는 “장하다, 순교자”로 그 가사가 바뀌었지만 그때 우리는 9월의 성가인 복자찬가 “장하다 복자여, 주님의 용사여!”를 힘차게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순교자 찬가인 “환난과 핍박 중에도”와 당시 공동체성가집에 실려 있던 “총칼이 가슴을 찢네” 등의 유태인 성가도 힘 있게 불렀습니다.
적어도 성가를 부르고 있는 그 순간 우리는 순교자들과 같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결연한 마음을 지니며 무소불위의 잔악하고 포악한 정권 앞에 우뚝 서서 십자가의 죽음을 가슴에 껴안고 용기 있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숱한 의인들의 여정, 성서에 기록되지도 못한 채 잊힌 더 많은 의로운 희생자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영화 ‘Passion of Christ’에서 표현한 것과 같이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고초와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을 우리는 너무도 안일하게 또는 무감각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로마시대의 순교자, 전세계의 모든 순교자와 의인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순교자들과 희생자들을, 이 9월에 더욱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분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되새깁니다. 지금도 여전히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너무도 마음이 아파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푹신한 침대에 모셨다는 한 어린이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기도의 마음을 함께 지니며 십자가의 예수님, 몸바친 순교자들을 정말 새롭게 묵상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런 저런 상념과 함께 주일을 준비하는 지난 토요일 오후에 전주교구의 박종근 신부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어쩐일이세요. 너무 기쁩니다. 신부님, 건강은 좋으세요. 지금은 어느 본당에 계세요? ……” 이렇게 오랜 벗으로서 안부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7,80년대 사제단에서 만난 기억과 행업을 회상하면서,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역사 현실적 의미와 후배 사제들의 아름다운 선택과 결단의 삶을 얘기하면서 불의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이른바 교계제도권의 권력 편향적 모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박 신부님께서는 제게 이런 소식을 전해주셨습니다.
“신부님, <헬스&미션>이라는 소식지를 아십니까? 한국 가톨릭의료협회가 출간하는 소식지인데, 요사이 제주에서 은퇴하신 김창렬 주교님이 글을 쓰고 계셔요. 그런데 그 내용이 너무 일방적이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기에 독자들이 오해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답답합니다. 함 신부님은 읽어보셨나요?” 저는 “아니요. 저는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박 신부님께서는 계속 말씀을 이었습니다. “대략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만사를 초연한 분이셨는데, 왜, 사제들이 나서서 특정 기업의 비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가? 왜, 쇠고기 수입문제 등에 사제단이 개입하여 반대하고 정치 현실적 문제에 뛰어드는가? 등의 내용입니다. 답답하고 마음이 무거워 이렇게 전화드립니다.”
저는 전화를 끊고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속에도 슬픔과 분노가 솟아올랐습니다. 이에 화살기도를 올리며 그동안 많은 이들이 걸어왔던 고난의 길을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아직도 7,80년대식의 이렇게 진부하고 고리타분한 글을 쓰는 분이 계시는구나.
독재권력 앞에서는 침묵하고 불의한 정권에 맞선 학생들과 사제들의 삶을 늘 왜곡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도대체 이들이 믿는 해방자 야훼 하느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은 누구신가? 등 문제를 제기하며 핵심적 내용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원자리, 골고타언덕, 십자가 예수님 죽음의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스리랑카의 신학자 A.피어리스가 <전례, 영성, 사회적 투신>이라는 글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전례기도의 뿌리, 영성의 출발점, 사회적 투신의 시발은 바로 이 골고타언덕 십자가 예수님이며, 갈바리아언덕이 바로 교회가 잉태된 자리라고 고백한 내용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성전이 아닌, 세상 한복판에서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억울한 사형수의 죽음, 그 자리, 바로 그곳이 장엄한 우리 전례기도의 원산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 흘리고 상처 난 예수님의 몸과 십자가가 영성의 출발점입니다. 옛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 등의 고문실, 옛 보안사, 기무사의 조사실, 경찰의 고문실 현장에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바로 그곳이 현대판 골고타, 현대판 순교지, 자유와 해방을 위한 영성의 성지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바로 그 대표적 예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당대 종교 대표자들인 대사제, 사두가이,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의 합작의 결과였고 여기에 빌라도 로마총독이 정치적 재판으로 가세했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불의한 종교재판, 불의한 정치재판의 결과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에는 종교적 불의, 정치적 불의에 저항하는 사회적 투신의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리스도론의 기초인 이러한 내용을 간과한 채, 김창렬 주교님은 예수님께서 세상만사를 초연하셨다고 했는데, 세상을 초연하셨으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겠습니까? 김 주교님의 주장은 그리스도 강생과 사랑의 실천원리에 어긋나는 거짓된 논리일 뿐입니다.
육체를 취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 가난한 이들을 벗으로 삼으신 예수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 고통받는 이들을 껴안으라고 가르치신 예수님, 더구나 최후의 심판 대목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들을 돌본 것이, 곧 주님이신 당신에게 해 준 것이고,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신 예수님, 끊임없이 이웃과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그 이웃과 세상을 변화시켜 모두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 속에서 구원을 이룩하라고 명하신 예수님의 행업을 어떻게 세상사에 초연하신 분이라고 거짓된 궤변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해석은 각자 다르고 자유일 수 있지만 배타적, 독선적 해석을 지양하고 포용적, 수용적 해석을 했으면 합니다. 저는 그리스도론을 익히고 강의하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경건하게 믿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 율법학자들에 의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다는 이 사실을 어느 날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오늘도 하느님의 숱한 아들딸들이, 교권과 신앙을 빙자한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 하느님의 이름으로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어이없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구원사와 예수님 그리고 순교자들과 의인들의 죽음을 묵상합니다.
신부님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하며 9월의 인사를 드립니다.
2009년 9월 2일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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