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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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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제1권-통권 68권 - 부끄러움이라는 시대의 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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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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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10 15:11:32 , 조회 :
2,169 , 추천 :
4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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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_제1권(68).pdf (979.1 KB), Download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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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라는 시대정신
다해 대림절을 맞아 신부님들께 전례시기를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함께 준비하고 기도하며 성탄의 기쁨을 나누고 새해 축복의 인사드립니다.
저는 지난 10월 9일,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부마항쟁 30주년 학술심포지움에 참여했었습니다.
종로 5가 기독교회관은 1979년 참으로 살벌했던 박정희 독재체제 때 명동성당과 함께 구속자들을 위한 은신처였고, 시민․학생․가족들이 함께 모여 애통해 하며 하느님께 간절히 호소하고 은총을 청했던 기도의 집이었습니다.
30년 전 눈물 흘리며 함께 모여 기도했던 뜻깊은 자리에서 이제는 사랑하는 옛 벗들과 함께 그리고 뜻있는 후학들과 함께 “박정희 독재체제와 부마항쟁의 역사적 조명” 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고 있으니 새삼 하늘의 묘한 섭리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심포지움은 참가자들에 대한 소개와 부산, 마산, 광주, 서울 등 민주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축사와 격려사 등의 기념식과 함께 다음과 같은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기조 발제:부마항쟁의 역사적 재조명 (서중석, 성균관대사학과)
발표1: 부마항쟁의 정치문화적 성격
귀향-혁명의 시원을 찾아서 (김상봉, 전남대 철학과교수)
토론: (김원, 한국중앙연구원 사회교육학부)
발표2: 부마항쟁의 주체 세력과 성격 (정태석, 전북대사회교육학)
토론: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학과)
발표3: 부마항쟁과 5․18민주항쟁
놀라운 붕괴, 거룩한 좌절(한훈구, 성공회대 교양학)
토론: (조정관, 정치외교학과)
발표4: 한국민주화와 지역의 역할(이은진, 경남대 사회학과)
토론: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기억을 통한 역사의 재해석
역사란 과거와의 대화이며 과거의 체험을 기초로 오늘을 재해석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창출하는 작업입니다. 때문에 역사는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종합보편학입니다. 역사의 핵심은 바로 ‘기억’입니다. 구원의 길잡이인 성서가 바로 기억의 책입니다.
성서는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되 그 사건이 바로 오늘의 나에게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게 전해주는 현실적이고 실존적 의미를 새롭게 끊임없이 찾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사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기억의 존재이며 종교도 기억의 행업, 기억의 의식(儀式) 모임입니다.
기억을 통해 우리는 반성, 성찰, 회개, 재현, 희망을 이룩하며 종교적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종교적 행업인 기억은 나아가 역사적 재조명이기도 합니다.
미사와 기도를 통한 기억, 제사와 차례 때 선조들의 행업을 기리는 일 그리고 일상의 기념식에서 거행하는 묵념은 바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상 기념식에서의 묵념은 바로 세상의 종교화이고, 기억을 통해 과거의 삶을 되새기고 미래를 창출하는 기도 행위는 바로 종교의 생활화이며 세상에 스며드는 소금의 역할입니다.
본회퍼는 이를 종교의 세상화(세속화)라 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주역인 요한 23세는 일상화(Aggiornrmento)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은총과 자연의 불가분의 관계도 바로 이를 입증하며 인간이 영육으로 이루어졌다는 인간학의 원리도 이러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종합할 수 있습니다. 이에 저는 미사봉헌 때의 마음가짐으로 늘 역사현실 재조명 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향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부마항쟁과 김재규 부장, 광주항쟁과의 연계적 관계
이 기회에 저는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과 1980년 5월 18일 광주항쟁의 깊은 관계를 되새기고 싶습니다. 두 항쟁의 시대적 그리고 지역적 배경은 다르지만 둘 다 불의한 독재체제에 맞서 청년․학생․시민 등이 봉기했다는 역사적 공통점과 교훈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부마항쟁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포악성을 그리고 광주항쟁은 전두환 신군부 체제의 잔인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마항쟁은 부산, 마산을 비롯한 경상도에서, 광주항쟁은 광주, 목포를 비롯한 전라도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광주는 오랫동안 소외된 지역으로 김대중이라는 상징적 인물에 대한 박해가 기폭제가 되었고, 부산은 유신의 아성이었지만 김영삼이라는 상징적 인물이 국회위원직에서 제명되었기에 이 사건이 항쟁의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모두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핵심과 뿌리를 찾아가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부산과 마산은 경상도 지역으로 박정희 체제의 아성이었으며 부산대학은 유신대학이라 불릴 정도로 시대적 고민을 상실한 죽은 대학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지역에서 박정희 유신독재를 거부하는 항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점이 박정희와 그 측근들을 더욱 당황케 했으며 이것이 부마항쟁의 특징이며 힘입니다.
부마항쟁 현장을 직접 찾아가 목격했던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해 이제는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하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실 그대로를 보고하며 일종의 완화정책을 건의했습니다. 그는 부산․마산항쟁이 앞으로도 대여섯 개 도시로 확산할 조짐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석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캄보디아에서는 200여만명을 없애버렸는데 그까짓 것 문제없습니다. 우리도 1～2백만명쯤 쓸어버리면 됩니다” 하고 잔인하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 “그래, 자유당 때에는 최인규, 곽영주 등이 발포 책임 때문에 죽었지만 이제는 대통령인 내가 직접 발포 명령을 할 텐데 누가 나를 어찌할 것인가?”하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이 말에 김재규 부장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았고 이미 여러 차례 박정희 제거를 계획했었다가 무산되었음을 상기하고 이번에는 꼭 성사시키겠다고 다짐하면서 10월 26일에 유신의 핵을 제거했습니다.
만일 김재규 부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부산과 마산은 광주보다 더욱 비참하고 엄청난 죽음의 도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뜻에서 김재규 부장은 부산과 마산 그리고 우리 모두를 비극에서 구해준 은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마항쟁을 김재규의 10․26 결단과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그가 유신의 핵을 제거했지만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계엄 하에서 일방적 왜곡보도를 통해 그의 진의는 재판기록에만 남아 있을 뿐 국민들에게는 다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0․26의 결단을 그는 민주혁명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당시 갇혀 있던 중 1979년 12월 8일 성모님의 축일에, 긴급조치 9호 해제와 함께 영등포교도소에서 풀려났습니다. 김재규 부장을 대면한 적은 없지만 그의 결단에 힘입어 석방의 은혜를 맛보는구나 하고 개인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밖에 나와 보니 사실 김재규 부장은 짐작대로 의인(義人)이었습니다.
이돈명․강신옥․황인철 변호사 등 여러 인권변호사들이 김재규 부장의 변호인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그분들이 재판기록을 제공하여 우리는 10․26의거의 핵심을 잘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들은 어떻게 하든 김재규 부장을 꼭 살려야 한다며 우리에게 구명운동을 요청했고 우리는 수도자, 교우, 시민과 함께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구명 서명서를 변호사를 통해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우리의 구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1980년 5월 24일 목숨을 잃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군인들에 의해 시민들이 학살당하던 광주비극의 시기였습니다. 광주항쟁 기간에 김재규 부장은 변호인과의 외로운 면담을 끝내고 아무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렇게 부마항쟁의 목격 증언자이며 은인인 김재규 부장은 바로 광주항쟁의 참극 속에서 외롭게 죽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광주 5․18민중항쟁을 장엄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 부장의 죽음은 잊고 있습니다. 김재규 부장은 바로 5․18 광주비극의 기간에 죽어간, 때문에 광주의 희생자이기도 합니다.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의 연계점에서 우리는 김재규 부장을 새롭게 조명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습니다. 서중석 교수의 기조발제에서 저는 이러한 점 등을 깨닫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부끄러움과 양심 그리고 시대정신
그런데 <부마항쟁의 정치문화적 성격>이라는 제1발표에서 김상봉 교수는 ‘부끄러움’ 이란 주제를 부마항쟁의 시대정신으로 제시했습니다.
김상봉 교수의 강의를 듣고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철학 교수인 그가 사제인 저를 제자리로 이끌어준 셈입니다. 그는 부마항쟁의 원동력을 ‘부끄러움’의 자각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철학적, 심리적 접근이며 더 나아가 매우 심오하고 근원적이며 종교적 해석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은 인간만의 특성입니다. 부끄러움이 없다면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부끄러움의 대칭어는 뻔뻔함입니다. 부끄러움에 대해 우리말 사전은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남을 대할 면목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끄러움은 바로 양심의 표출입니다. 이와 같이 부끄러움은 양심과 함수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양심이 마비되고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같습니다.
부마항쟁의 주역인 시민․학생․청년들은 부끄러움을 깨달았습니다. 부산대학이 유신대학인 점이 부끄러웠고, 부산, 마산, 창원 등 경상도 지역이 독재자의 아성인 점이 또한 부끄러웠습니다. 부끄러움을 깨닫고 있는 한 시민들의 정신은 되살아나게 마련입니다. 살아 있었기에 그들은 모두 일어섰습니다.
사실 당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사건이 부마항쟁의 촉발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 근저에는 이 ‘부끄러움’이라는 시대정신이 핵심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김상봉 교수는 또 다른 재미있는 점을 제시했습니다. 당시 부산, 마산 시민들은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와 일체감, 연대감, 동체감을 지녔었다는 사실입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연대성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곧 한 형제자매라는 신비체(神秘体)의 원리를 함께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강의를 들으면서 저는 줄곧 부채감, 속죄, 회개, 고백, 정직, 정의, 양심회복이라는 신학적 그리고 통회라는 어휘들을 생각하면서 결국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초가 인간임을 그리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도덕적, 종교적 존재이기에 근본적으로 도덕과 인륜이 인간의 핵심적 가치임을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왜 ‘부마항쟁정신이 오늘날에는 부산과 마산에서 분명하게 계승되지 못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며 김 교수는 그것은 부마항쟁정신과 박정희 독재와의 모순관계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모순관계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박정희 체제에 대한 바른 청산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부마항쟁정신은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 중에 분명히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부마항쟁의 현실이며 우리의 현주소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90년대 이른바 3당합당 이후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부끄러움’ 이라는 핵심적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움’이 바로 부마항쟁의 시대정신임을 깨닫고 오늘의 현실에 대해 새삼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사실 세례 때에 우리는 죄와 악과 악마를 끊어버리겠다고 세 번이나 다짐합니다. 죄와의 분명한 결별이 신앙인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세례 때의 이 약속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께 대한 삼중의 신앙고백이 과연 우리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겠는가 라고 반성하면서 박정희의 체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부산의 현실 그리고 우리의 역사 현실에 대해 깊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미사 때에 그리고 저녁마다 반성의 기도를 올리는 우리는 바로 하느님과 이웃, 선조들과 역사 앞에 부끄러움을 깨달아야 함을 새삼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학교, 사회, 경제, 문화, 정치,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부끄러움’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움’을 잊었다는 것은 양심의 상실, 가치관 상실, 도덕의 상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성의 상실이기도 합니다.
과연 오늘날, 불의한 현실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끄러워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봅니다. 모두가 온통 뻔뻔한 사람들 뿐입니다. 뻔뻔하다는 것은 양심을 상실한 것입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어머니들 앞에서, 용산참사 비극 앞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끊은 연예인들의 호소 속에서, 삼천리 금수강산이 마구 파헤쳐지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국정감사장에서 우리는 뻔뻔한 국회의원들을 봅니다. 검찰총장, 장관, 총리 등 공직자들의 청문회에서도 우리는 뻔뻔한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이중 잣대 기준의 뻔뻔한 여당 국회의원들 그리고 왜곡보도로 일관하는 더욱 뻔뻔한 조․중․동의 보도를 보면서 슬픔과 분노를 느낄 뿐입니다.
그러나 슬픔과 분노에 앞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의한 현실 앞에서 그리고 순교자들과 선열들 또한 민주 희생자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합니다. 부끄러움이 정화와 창조 그리고 재생의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사제들과 바리사이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무섭게 꾸짖으셨습니다. 그 꾸짖음은 오늘날 바로 우리 사제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새삼 부끄러움의 깊은 뜻을 되새기며 속죄의 시기인 이 대림절에 뻔뻔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하느님과 이웃 앞에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정직한 삶을 다짐합니다.
신부님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하며 시대와 교회의 현실을 고민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 하얼빈의거 100주년
김재규 부장 10․26의거 30주년을 기억하며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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