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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나해> 제3권-통권 82권 - 함석헌 선생님을 기리며

기쁨과희망

2012-03-29 13:59:08 , 조회 : 1,464 , 추천 :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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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선생님을 기리며

부활과 선거의 기쁨

1. 사순절을 반 이상 지내고 이제 부활축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꽃피는 4월을 시인들은 ‘잔인한 달’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대체로 4월에 죽음을 넘어 죽음을 이긴 부활을 믿음과 기쁨으로 노래하며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과연 무엇일까를 우리는 늘 새로운 관점에서 묵상하고 창조적 삶을 이룩해야 합니다. 4월에 우리는 4․19민주혁명을 기념합니다. 저는 대신학교 1학년 시절 한공렬 학장신부님(후에 광주교구장 대주교, 1913～1973년)께서 들려주신 불사조(Phoenix)의 교훈과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늘 되새기며 교부들을 공부하고,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이 주제를 늘 현실과 역사 안에서 되새기곤 했습니다. 흔히 한자로 표현하는 사즉생(死卽生)도 바로 그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죽음을 통해서 공동체의 선익과 삶을 가져온다는 그리스도교의 부활론,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우리는 임진왜란 420주년(1592),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1962～1965), 유신정변 40주년(1972), 그리고 87년 6월항쟁 25주년을 맞는 뜻깊은 한해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부활 첫 주간인 4월 11일에 우리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르게 됩니다.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리라”(묵시 21,5)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종말론적 천지개벽을 주제로 사순절을 묵상한 우리는 기필코 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물줄기를 바로 잡아 보다 진전된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룩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과 합의가 바로 현실에서 부활로 꽃피고 열매 맺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합니다.

특히 올해는 함석헌 선생(1901～2012) 탄생 111주년을 맞는 해로 함석헌기념사업회는 3월 24일에 기념강연회를 갖습니다. 저는 ‘군사문화 척결을 위한 함석헌 선생님의 꿈과 기도’라는 주제로 원고를 집필했습니다.

이 기회에 저는 《함석헌 평전》(김성수, 삼인, 2011)과 그 외 함선생님의 글 몇 편을 읽고 많은 것을 새롭게 깨닫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함석헌 평전》의 저자 김성수님은 1960년생으로 한국철도대 졸업 후, 철도청에서 일하고 있던 중 1989년 2월 4일 서울대 영안실에 누워계신 함선생님의 시신 앞에서 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그 후 1990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퀘이커교의 장학금으로 8년간 공부하여 함석헌 선생님의 삶을 주제로 박사가 되었고 귀국하여 여러 영역에서 시민활동가로 투신하고 있습니다.

《함석헌 평전》을 통해 저는 그분의 삶 전체를 새롭게 종합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함석헌 선생님 탄생 111주년 기념강연회에서 발표하고 씨알의 소리 3-4월호에 실릴 예정이기도 합니다. 이 글 중 2․3․4항을 뽑아 미리 신부님들과 함께 나누며 부활절 인사를 드립니다.

함석헌 선생님과의 만남

2. 저는 학창시절에 먼발치에서 함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기존 종교에 대해서는 물론 특히 가톨릭의 체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신 대목에서 저는 좀 의아했고 그 당시에는 다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분의 제도적 교회에 대한 거부와 종교다원주의 등 깊은 뜻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함석헌 선생님을 1974년 11월 27일 서울 기독교회관 2층 민주회복국민회의 창립대회에서 직접 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2월 6일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대표단 첫모임에서 함선생님을 윤형중 신부님과 대면하도록 모신 적이 있고 그 후 민주회복국민회의 공동대표회의 때마다 함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함석헌 선생님은 1960년대 사상계를 통해 가톨릭 체제를 무섭게 비판하고 공박했으며 이에 윤형중 신부님이 반론을 제기하는 등 여러 차례 공방이 있었습니다. 당시 학생들과 지성인들은 함선생님과 윤형중 신부님의 논쟁 글을 흥미롭게 읽었고 함석헌 선생님의 거침없는 표현과 독설, 윤형중 신부님의 토마스 신학에 기초한 삼단논법의 냉철한 주장 등 두 분의 개성을 함께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은 같은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삶의 자리와 배경이 서로 다른 사상의 적수들인 셈인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며 인권회복과 민주주의 회복 과정에서 민주화의 동지로서 한자리에서 만났습니다. 참으로 뜻있는 만남의 자리였습니다.

제가 윤형중 신부님께 함석헌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자 두 분은 마치 소년처럼 서로 얼싸안고 기쁨과 친교를 나누셨습니다. 명동성당 구내 옛 주교관 3층에서의 두 분의 상봉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 장면이었습니다. 저는 이 두 분의 삶과 모습을 제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달변가인 이태영 변호사께서 함께 하셨기에 첫날의 모임은 그 자체가 축복이며 기쁨이었습니다.

또한 저는 1976년 3월 1일 이른바 명동 3․1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구속되고 함석헌 선생님은 불구속 상태에서 문익환 목사님 등 여러분들과 함께 1년에 걸쳐 법정에서 같은 피고로서 재판을 받은 공범관계에 있기도 했습니다. 그때 함선생님은 76세셨고 저는 35세의 젊은 사제였습니다. 기쁜 인연을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의 원체험

3.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마침 93주년을 맞는 3․1절입니다. 함선생님의 평전을 읽으면서 저는 나름대로 함선생님의 삶을 다음과 같이 4시기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제1기 1901～1919년까지 출생에서 성장과정인 청소년시기,
제2기 1919년 3․1운동 체험에서 1928년 일본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청년시기,
제3기 1928년 오산학교 교사로 후학들을 양성하며 해방을 체험했지만 남북분단과 함께, 북과 소련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고문당한 뼈아픈 체험,
제4기 1947년 남하한 후 1989년 선종 때까지의 남한에서의 반독재민주화 통일의 삶.

함선생님의 신앙과 민족에 대한 원체험은 바로 1919년 3․1독립운동이었습니다. 일제 침략에 항거한 자유를 위한 투신, 민족의 정체성 확립,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을 파악하며 그 진위를 식별할 수 있는 은총의 계기가 바로 3․1독립운동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궁극적으로 교회공동체와 신앙의 핵심 곧 민족과 함께하지 않는 교회와 신앙은 아무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권력에 야합하는 종교와 교회의 허구성을 깨달으며 예수님의 구원핵심과 평화의 가르침을 깨달았습니다. 3․1운동의 원체험은 함석헌 선생님 일생에서 새로운 동력, 그 삶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3․1운동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그는 평범한 의사 또는 관료로서 기존제도와 정치의 한 부속인간이 되고 말았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술회했습니다. 19세 때의 청춘의 체험, 민족의식, 신앙의식, 교회정체성 그리고 분명한 신관을 갖게 된 그는 그 후 일본에 유학하여 우치무라 간조 스승을 만나 무교회주의를 접하고 이때를 전후하여 평화운동 공동체인 퀘이커교를 만나면서 나름대로 그리스도교사상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언제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성서자료와 신학서적이 부족했던 당대에 함석헌 신생님은 귀국하여 오산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무엇보다도 성서를 껴안고 민족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자유와 해방이 그분의 열망이었습니다. 1934년 12월부터 1935년 12월 성서조선에 연재한《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 후에 남하하여 1961년에 《뜻으로 본 한국역사》로 개정 출판한 이 책의 시도는 과감한 신학적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유다와 이스라엘의 역사 그리고 이집트 노예, 아시리아와 바빌론 등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아픔의 수모를 겪어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나라를 빼앗기고 분단된 조선반도에 적용하여 과감하게 메시아 평화의 나라를 꿈꾼 함선생님의 예지는 가히 예언자적 식견이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네 번이나 옥고를 치렀던 그분은 특히 일제가 패망하고 미․소의 진군으로 남북이 분단된 상태에서 평북 자치위원회 문교부장을 맡아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려했건만 이제 내나라, 내 땅에서 신의주학생 의거의 배후인물로 지목되어 소련군에 체포되어 구타와 고문을 당하며 형언할 수 없는 민족적 비애 속에서 참으로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과 아픔을 뼈 속 깊이 체험합니다. 기막힌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때 바로 이스라엘의 이집트 노예살이, 바빌론 유배의 아픔, 무엇보다도 십자가 예수님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며 민족을 위한 속죄와 화해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구타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그는 평화를 추구하며 아픈 마음으로 남하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남쪽에 오니, 친일매국노들이 판을 치고 이승만 독재는 부패했습니다. 이에 함선생님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하여 고난의 길을 걷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북에서도 남에서도 늘 직언했기에 배척받는 예언자적 길을 걷게 됩니다. 기가 막힌 체험에서 그를 지탱케 한 힘은 오직 하느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3․1독립 정신이었습니다. 참으로 그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빼앗긴 채 맨몸으로 거대한 권력과 싸운 의인이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하느님의 발길에 치인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현실에 매몰된 장로교를 비롯한 개신교 전체와 특히 목사들을 가차 없이 질타하며 직언했고 가톨릭에 대해서는 더욱 쓴 소리로 비판했습니다. 그는 자유로운 사상가, 주창가입니다.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성서의 진리로 모든 것을 후려친 예언자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함선생님은 무력과 침략을 거부하며 메시아의 평화를 꿈꾸면서 일본 유학시절부터 결국 교회체제, 국가체제를 넘어서야함을 확신하고 고민하던 중 자신의 신념과 가장 가까운 퀘이커교와 만나면서 후에 한국 퀘이커교의 상징적 인물이 됩니다. 퀘이커교의 인격주의와 평화사상에 매료된 그는 분명 평화주의자입니다.

특히 그는 1950년대 후반 전쟁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그 어떤 목사가 전쟁에 이의를 제기하고 평화를 외쳤느냐고 일갈하며 모든 교직자들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너무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하늘나라의 기쁜소식을 전하고 평화를 선포하고 실천해야 할 목사와 사제들 중 그 누구도 남북 동족상잔의 전쟁에 대해 ‘아니오!’를 외치며 나선 이가 없다는 것에 대해 그는 의분하였습니다. 이승만 독재자의 핍박을 받은 그는 박정희의 군사반란을 무섭게 비판하며 거짓군인 박정희 일당의 허구성을 질타합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선봉자, 평화주의자로서의 길을 계속 걷습니다.

그의 사상적 배경에는 성경과 노자, 장자의 사상이 있습니다. 1950～60년대 그는 이미 종교다원주의자로 성숙한 인간, 성숙한 신앙인, 성숙한 종교인이었습니다. 이점을 저는 이제야 높이 평가합니다. 1970년 4월 19일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여 1980년 7월 31일 씨알의 소리가 폐간될 때까지 씨알, 오직 우리시민, 백성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 씨알이 중심이 되는 아름다운 인간 공동체를 꿈꾸었습니다.

전쟁과 군인을 무섭게 질타했던 함선생님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제거된 이후 미국에서 급히 귀국하여 젊은이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염원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시다가 전두환 소장이 지휘한 서빙고 보안사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일제 치하에서의 고난, 소련군과 북한공산주의자들에게 당한 고문,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체제에서의 고난 그리고 끝으로 남한 군인들에게 당한 고문 속에서 함선생님은 처절한 예수님의 기도를 반복해 올리셨으리라 확신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준비위원장으로 추대된 그는 그의 절친한 후배이며 동지인 안병무 교수 등 사랑하는 벗들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직 평화라는 가치 때문에 이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것은 어쨌든 노년기에 접어든 한 인간의 한계가 아니었을까 하고 저는 나름대로 해석해 봅니다. 생의 마감을 앞둔 병상에서의 선택과 결단이었습니다. 어쨌든 함선생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은 북한은 불참했지만 그래도 그 외 공산권 국가들이 함께한 서울 올림픽이 평화의 길잡이라는 확신과 바람에서 수락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더 많은 민주화의 동지들과 후배들은 노태우 군사정권의 술수에 속은 것이라는 큰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3․1독립운동 체험에서 깨닫고 실천한 그는 참으로 한국 현대사의 세 물줄기인 첫째 항일독립투사의 길, 둘째 반독재, 인권과 민주주의의 실천가로서의 길 그리고 셋째로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몸 바친 통일의 선구자로서의 길을 성실하게 걷고 아름답게 삶을 마감한 20세기의 모범인입니다.

군인과 전쟁을 넘어서야 할 인간정신과 평화가치

4. 군인에 대한 함선생님의 1956년 6월의 ‘전쟁과 똥’이란 제목의 첫 글을 읽었습니다. 매우 직설적이며 신선한 글이었습니다. 동물의 배설은 필수적 과정이지만 사람은 안 보이는 데서 똥을 누고 또 똥을 빨리 치운다는 것입니다. 전쟁도 인간 공동체 과정에서 없을 수 없는 일이지만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 함선생님의 논리입니다. 이 비유에 대해 물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여백은 있지만 6․25 동족상잔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6년 이승만 반공독재시대에 이렇게 과감하게 전쟁과 군인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하며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이 흘린 피와 동포를 살상한 민족적 죄악을 꾸짖으며 직언한 함선생님은 참으로 대단한 분이시구나 하고 새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 저는 군인정신(1961), 대화를 통한 평화(1968), 평화문제에 대하여(1968), 군인정치 10년을 돌아본다(1971), 비폭력 혁명(1980), 퀘이커와 평화사상(전쟁은 최고의 사치다)(1983), 한민족과 평화(1986), 정치․사회적 풍토와 폭력(1987) 등의 글을 씨알의 소리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여 읽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첫 체험이 중요하듯 제가 읽은 첫 글 ‘전쟁과 똥’이 함선생님의 전쟁척결과 평화사상의 핵심을 담고 있는 글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다소 거칠고 원색적 표현이긴 하지만 저는 그 글 안에서 함석헌 선생님의 삶과 체험을 압축하여 확인했습니다.

그 글은 함선생님께서 56세에 쓰신 글로, 대상이 바로 군인들이었습니다. 군대 어느 기관에서 나올 잡지에 싣기 위해 집필했지만 결국 실리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6년 뒤 1962년 단행본 ‘생활철학’ 속에 편집되어 실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을 주목했습니다.

군인 앞에서 군인에게 군인의 핵심과 본분을 일깨우면서 인간의 본성과 함께 그 본성을 극복하며 보다 아름답고 가치 있고 위대한 것을 창조해야 할 인간의 창조성을 확인하면서 군인도 결코 전쟁 속에 매몰되지 말고 무릇 군인과 전쟁을 넘어서는 그 다음의 세계, 평화를 추구하라는 종말론적 메시아사상 제시는 바로 구원신학의 핵심입니다. ‘전쟁과 똥’은 군인과 인간의 필수적 속성이지만 인간은 모름지기 그 필수적 속성도 넘어서서 초월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꿈과 이상의 제시입니다.

함선생님은 그 글의 결론으로 민족의 일치와 화해, 통일을 염원하시며 우리가 이룩하고 지향해야 할 나라는 결코 군사강국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나라, 메시아나라, 평화의 공동체임을 확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날이 꼭 오리라 확신하며 군인들에게 ‘그날’을 이룩하라고 호소하고 하느님께 기도하십니다. 그날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날, 영광과 부활, 결정적 구원의 날이며, 피압박 민족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그날입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치하에서 우리 선열들은 숨죽이면서도 ‘그날’을 노래했고 ‘그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하지만 그 해방은 껍데기일 뿐 결국 남한은 미국에, 북한은 소련에 점령당한 또 다른 유형의 식민지였을 뿐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소련의 하수인이 된 남북의 정치인들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왔고,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분열된 상태에서 자신의 길만을 고수하면서 하늘과 선열들께 죄를 짓고 결과적으로 민중들을 짓밟는 또 다른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남과 북에 모두 군사문화가 깊숙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1956년에 실리지 못한 이 글이 1962년에 출판되었으니 결과적으로 이글은 1961년 박정희의 5․16군사반란을 지적한 셈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함석헌 선생님의 60평생의 삶을 압축한 자기고백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 후 퀘이커 교도로 활동하시면서 이제는 군사문화 척결이라는 주제를 평화사상, 그리고 화해와 일치로 승계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글의 진솔하고 강력한 표현 때문에 다른 글은 별로 제 눈에 들어오지 않아 저는 다시 이 글로 되돌아와 이 글을 읽으면서 혼자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점잖으신 함선생님께서 두루마기 복장의 흰 수염의 60여세 노인이 오늘날 우리식으로는 ‘개그’식 표현에 가까운 표현을 하시면서 그 자신은 “왜 웃어요? 내가 뭐 틀린 말을 했어요?” 하시며 반문하실 것 같아 저 혼자 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문득 그 글 안에서 시편작가의 탄원과 저주, 예언자들의 직언, 세례자 요한의 독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이 녹아있음을 확인했습니다.

특히 그는 어떻게 학생, 교육자, 지성인, 종교인 등 모두가 그 신원의 가치를 모두 잊고 군에 입대만 하면 모두 군인이 되어 살상을 권리와 의무로 생각하는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제기합니다. 모름지기 학생과 교육자, 종교인이라면 군인사회를 더욱 정화하고 인간적 사회로 변모시켜야하건만 오히려 군인이 되고 있음에 대해 함선생님은 통탄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평화와 복음을 전하고 사제로서 신학생 시절에 양심적 병역을 거부하지 못하고 모순된 군인사회에 매몰된 저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합니다. 또한 한국 가톨릭의 시대적 한계를 함께 반성하며 전쟁을 거부하고 평화를 실천하는 퀘이커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에 대해 존경을 표합니다.

새삼 남북의 일치와 화해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노래합니다.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과 건투를 빕니다.

2012년 3월 11일 사순절 3주일 사순절 중턱에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