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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포와봉사(Kerygma et Diakonia)'는 사제들을 위한 강론길잡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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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 제2권-통권 57권 - 축복의 기도와 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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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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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1 15:59:45 , 조회 :
3,529 , 추천 :
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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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_제2권(57).hwp (440.5 KB), Download :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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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기도와 회개
찬미 예수님
<선포와 봉사>를 아껴주며 관심을 갖고 계신 뜻있는 독자와 필자 등 모든 신부님들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1월 1일 성모님 축일 미사 제1독서 민수기 6,22-27(음력 설날 미사 제1독서도 같은 대목)의 말씀과 주석서를 읽고 강론을 집필하면서 민수기의 사제적 축복이 바로 우리의 새해 인사와 같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민수기의 사제적 축복은 두 번의 축복을 세 번이나 반복해 결과적으로 여섯 번 반복하는 축복기도가 됩니다. 내용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주님께서 복을 내려주시고+지켜주시고 ②주님께서……얼굴을 비추시고+은혜를 베푸시고 ③ 주님께서……얼굴을 들어 보이시고+평화를 베푸시리라.
유다인 특유의 반복을 통한 강조어법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구하라는 예범적 말씀입니다. 우리의 새해 인사는 이 여섯 번의 반복을 농축하여 분명하게 한 번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고 축복을 빕니다. 사실 전체적 내용은 “새해 하늘이 주실 복을 많이 받으십시오” 라는 뜻입니다. 이에 우리의 새해 인사는 바로 사제적 축복기도와 기묘하게 상통된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다만 우리의 인사가 구체적으로 대인(對人的)·개인적인 것이라면 민수기 6장의 모세와 아론의 사제적 축복기도는 백성들 모두를 위한 공동체적 의미가 강하다는 것입니다. 민수기의 축복기도의 대상은 물론 개인을 전제로 했겠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한 것에 대해 우선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에 저는 기도와 축복이 지닌 공동체의 의미를 염두에 두면서 새해 첫날의 미사 그리고 음력 설날의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복(福)이란 한자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복(福)이란 바로 볼 시(示)와 가득 찰 복(畐), 두 글자의 합성어로 금문(金文)과 갑골문(甲骨文)에 따르면 “신(神)에게 정성껏 바치는 술통”의 뜻이랍니다. 따라서 신(神)께 바친 정성이 그득하듯 신(神)께서 우리 모두에게 복을 가득히 내려주십사 간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복을 받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정성과 정직을 생각하면서 기도하고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 저는 음력 설날을 맞으면서 사실 개인적으로 늘 고민과 갈등을 갖습니다. 음력설이 분명히 전통적 명절이라지만, 어쨌든 1945년 이후 남한 단독 정부수립이라는 한계적 상황에서 양력설, 곧 단일과세 원칙을 40여 년간 고수하여 잘 정착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5년경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거부에 부딪혔던 불법적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국민적 관심을 바꾸는 묘책의 일환으로 음력설을 공식적 휴일로 정하며 합법화하고, 그 뒤 노태우 정권이 하루 이틀 쉬는 날을 더하여 결국 음력설이 폭발적으로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과 이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 사건에 대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는 우리가 분명히 지적하고 기록에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 저는 제 자신의 한계를 전제하지만 그래도 제 생각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저는 1965년 가을에 우르바노 신학교에 유학을 갔습니다. 200여 명이 함께 한 로마 신학교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국제적 감각을 키우며 성서가 말한 이른바 종족과 문화를 넘어 사랑의 보편성을 체득하면서 지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신기한 로마 신학교 생활이었습니다.
신학교에는 도서관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는 각국의 도서들이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라별로 책장에 정리되어 중국(Cina) 다음에 한국(Corea) 책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책장의 경우 책 제목의 반 이상이 한자(漢子)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때문에 분명히 Cina와 Corea칸은 구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책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중국어 책들이 한국어 책장에 그리고 한국어 책들이 중국어 책장에 뒤섞여 꽂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날 친구 중 한 명이 쉬는 날 함께 도서실 책을 정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하여 연휴가 있는 날을 택해 한국어 책들의 한자어 표지를 모두 다 한글로 바꿔 새롭게 장식하여 정돈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도서실 책장을 말끔히 정리하니 중국어 책과 한국어 책이 혼동되는 일이 없어 너무나 기뻤던 일이 생각납니다. 한글을 통해 일종의 문화적 주체성을 이룩한 셈이었습니다.
또한 우르바노 신학교에는 3,40여 개국 신학생들이 함께 있었기에 각자 자국의 기념일과 성인, 순교자 축제 때에는 자기네 나라 성가를 부르면서 미사를 봉헌하곤 했으며 전례의식의 변화를 통해 기도의 기쁨과 생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의 케냐, 콩고, 수단, 나이제리아 등 우리가 보기에는 다 비슷비슷한 나라들이지만 그들은 각기 그들 나름대로의 춤과 노래와 고유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의 경우 성가 자체의 음률이 “쿵쿵-쿵쿵-쿵” 하며 그들 특유의 춤추는 동작으로 성가를 부르면서 서로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 듣고 있는 우리도 저절로 몸이 움직이면서 춤 동작을 따라 하곤 했습니다. 신기하고 어떤 때에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의 경우 7월 5일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 사제 순교자 축일이 대표 축일로 기억되어 순교자 찬가와 김대건 신부님 찬미가를 부르며 미사를 봉헌하였고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며 대한인의 정체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음력설을 앞두고 대만, 홍콩 신학생들의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만이 중국어권의 대표국이었고, 중공대륙은 냉전 상황 속에서 공산괴뢰 적대국이었기에 로마 신학교에는 중공대륙 신학생이 파견되지 않았었습니다. 당시 중국을 대표했던 대만, 홍콩 그리고 같은 음력문화권의 베트남이 음력설을 함께 기억하며 공동으로 축제미사를 봉헌키로 했다면서 우리 한국인들도 함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에 함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다섯 명의 의견이 각각 달랐습니다.
한국의 경우 양력 단일과세가 국가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중국계 신학생들과 함께 음력설을 기념한다는 것은 이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문제도 생각해야 했습니다. 또한 다른 나라 신학생들에게 우리가 중국문화에 여전히 종속되어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안 된다는 의견과 그래도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 우리 선조들이 기억했던 음력설을 함께 지낸다는 것은 보편적 교회적 관점에서나 역사적 관점에서 좋은 일이라는 찬성 의견이 팽팽히 맞섰습니다.
저는 이 두 의견 가운데 뚜렷한 주장을 펼치지 못한 채 엉거주춤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국제신학교에서 비슷한 문화영역의 신학생들이 함께 모여 축일을 기념하는 것이 매우 타당하고 아름다운 것 같았고, 또 한편 정부의 단일과세 정책을 따르는 것도 국가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단순히 국제적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 교회 축일의 길잡이가 양력이니까 단순하게만 생각했었고 음력과세금지와 양력설 단일과세 정책이 일본제국 강점기하의 정책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별 관심을 두지 못했었습니다. 어쨌든 찬반양론 속에 우리 다섯 명의 벗들이 합의한 결정은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또 단일과세 원칙 준수를 위하여 음력설 축제 기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고 대만, 홍콩, 베트남 신학생들과 공동으로 음력설을 기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아쉬워하며 섭섭해 했습니다.
40여 년 전 신학생 시절의 이 추억을 떠올리면서 저는 지금도 음력설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좀 떨떨한 마음으로 제단에 섭니다. 그리고 음력설 전후 3일이 공식 휴일이지만 일반적으로 적어도 1주일 정도가 휴가기간인데 양력설을 바로 한 달 전에 지내며 새해 인사를 건넸던 우리가 다시 또 음력설에 새해 인사를 나누면서 미사를 봉헌하니 개인 체험상 개운치 않습니다. 이런 생각을 동료사제에게 얘기했더니 문화의 큰 물줄기 속에서 이해하라는 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문화란 우리 선택의 결과입니다. 사실 빠스카 축제도, 에집트 노예생활에서의 해방이 핵심이었지만 팔레스틴에 정착하면서 과월절 축제와 무교절 축제가 묘하게 혼합되어 전해오고 있으며 바빌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많은 축제들이 새로 제정되어 기억된 사실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한 모순적 내용이 우리 눈앞에서 펼쳐질 때에는 계속 떨떠름합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사셨을 때에는 얼마나 더 기막히셨을까 하며 다소 비약적 생각으로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서 이후 교회의 진전과정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많은 내용들을 확인하곤 합니다. 사실 한스 큉(H.Küng)신부가 ≪그리스도교 본질과 역사≫ (2002, 분도)에서 자세히 지적했지만 우리 교회 역사 안에는 정직하지 못할 뿐 아니라 거짓을 조작하여 정당화한 어이없는 엄청난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 무엇보다도 교회공동체, 특히 권력을 지닌 교직자들이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 현실이 바로 도덕성과 윤리 원칙을 저버린 부끄러운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때가 다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외침입니다. 우리는 또 사순절을 맞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라!”는 외침을 생생하게 듣습니다. 사순절 뿐 아니라 1년 내내 그리고 5년 동안 아니,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늘 반복해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말씀은 오직 ‘회개’뿐임을 되새기며 진지한 마음으로 주님의 제단 앞으로 나아갑니다.
신부님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하며 건투를 빕니다.
2008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에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가족들과 함께
함 세 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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