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전숭규 신부   2006-12-05 10:18:35 , 조회 : 3,638 , 추천 : 414




겨울에 눈 덮인 산을 가다보면 앞 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습니다. 그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까지 안심하고 갈 수 있다는 믿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발자국 하나 없는 산을 가다보면 한걸음 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히지 말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평소 애송하던 “답설”(踏雪)이라는 시입니다. 선생은 독립운동을 하면서 삶이 힘들고 고단할 때 이 시를 가슴에 새기며 조국 독립의 숭고한 목적을 향해 꿋꿋이 걸어갔다고 합니다.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 흰 눈밭을 걸어가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다만 어떤 이는 아무 자취도 없는 길을 먼저 걸어가고, 어떤 이는 눈밭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고 뒤따라서 갑니다.

지나온 한해를 되돌아봅니다. 신부는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처지에서 살아 갑니다. 저 또한 지난 일 년도 강론이다, 훈화다 하여 많은 말들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강론은 신자들뿐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말한 만큼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제가 잘 압니다. 삶의 안받침이 없는 말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공허하고 창백하게 들렸겠는가를 생각하니 부끄럽습니다. 말만 앞세우는 저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따라올까 두렵습니다.

신부의 삶은 아무래도 남보다 먼저 눈밭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 발밑을 보아라!
새해에는 제 자신의 발밑을 응시하며 조심해서 걸어가리라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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