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신부
   연제식 신부   2007-04-09 09:59:23 , 조회 : 3,127 , 추천 : 432



내가 신부다 신부다 할 때는
네가 신부냐 신부냐 하더니
신부이기를 포기하니까
신부님 신부님 하더라.

이곳 은티마을에 들어와 산 지 8년이 되었다. 나도 평생 본당 신부 이외에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대금을 너무 불어서 그런지 목에 폴립이 생겨 수술한 후부터 말을 잘못하고 7년 묵언 수행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본당 신부 그만하고 다른 길을 준비하라는 주님의 뜻으로 생각되어 환경운동을 몸으로 사는 귀농을 하게 되었다. 당시 청주교구장님이신 정 추기경님께 말씀드려 흔쾌히 허락해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풍성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이곳 은티마을에 인연이 되어 땅을 구입하고 농사 짓지 않고 버려두었던 과수원을 다듬어 집을 지었다. 혼자 조용히 농사 짓고 그림 그리고 기도하며 살면 되겠다 싶었지만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이제 전국구가 되었다. 35호쯤 사는 이곳에는 교회도 없고 절도 없고 신자는 할머니 한 분뿐이셨는데 처음엔 사람들이 신부가 뭔지 몰라서 나보고 “어이! 연씨 아저씨!”하고 부르더니 고추도 팔아주고 나물도 팔아주고 부역도 하고 마을 회의도 빠짐없이 나가고 애경사 꼭꼭 챙겨주고 하니까 이제는 “신부님! 신부님!”한다.

매일 미사가 있으니까 주변에 샬트르바오로회 수녀님과 사랑의씨튼회 수녀님들이 들어와 사시고 신자들도 모여들어 새로운 교우촌이 생겨나는 느낌이다. 동네 신자도 열대여섯으로 늘어났고, 가끔 1일 피정을 오는 신자도 있다.

농사는 2-3백평 정도 밭농사만 하는데 쌀 이외의 먹을거리는 거의 자급자족한다. 6각형으로 7평짜리 통나무 성당을 지었는데 빽빽이 껴 앉으면 50명은 들어간다. 내가 사는 방은 10평짜리 나무와 흙으로 된 집인데 지붕에는 흙을 얹고 잔디를 심었다. 방은 손님방과 내방 두 개이고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고 요를 깔아놓으면 언제나 따뜻하다. 겨울에 나무는 작은 지게를 지고 가 죽은 나뭇가지를 까치집만큼씩 해다가 땐다. 물은 산에서 흐르는 계곡물을 파이프를 통해 끌어다가 쓰는데 겨울에도 항상 흘러가게 열어놓으면 얼지 않는다. 아마 좋은 공기, 좋은 물만도 프리미엄 월 300만원은 될 것 같다.

밭일을 하다보면 바람 따라 여러 가지 꽃향기가 실려 온다. 4월 찔레꽃 향기부터 인동꽃 향기가 끝나면 냄새만으로도 배부른 밤꽃 향기가 넘쳐나고 칡 꽃내음 또한 싱그럽다. 사람이 음식으로만 살지 않고 향기도 먹어야 제맛이다.
사람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사람이 흙에서 살면 흙처럼 되고 아스팔트 위에 살면 아스팔트 마음이 되고 콘크리트 속에 살면 콘크리트가 되나 보다.

흙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실직도 없고 명퇴도 없고 은퇴도 없다. 어머니인 흙을 떠나 행복이 있을까? 행복이 가능할까? 새소리도 바람소리 물소리도 못 듣고 귀가 행복할까? 흐르는 물을 떠먹지 않고도 깨끗한 피를 지닐 수 있을까? 이제 아무 바람도 없다.

그냥 그래도 그만큼 그렇게 즐겁고 자유롭다. 나는 비에 젖지 않는 연꽃같고 그물에 걸림 없는 바람같다. 아무도 빼앗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가 고요히 넘쳐난다. 날마다 좋은 날인데 이런 삶이 영원하다니….

<연제식 신부 / 청주교구 은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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