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audium et Spes Pastoral Institute *
 
                 
 




 

 


   

농약 뿌리기
   구일모 신부   2007-08-09 10:52:02 , 조회 : 2,906 , 추천 : 477


어느 날 오후 한 농가에 일손을 도우러 갔다. 몇 해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여든 살에 가까운 연세에 홀로 농사일을 하며 사는 할머니 댁이다.

할머니는 한동안 밭을 매시고 난 다음에, 이제는 구기자 밭에 농약을 주겠다며 농약 뿌리는 기구를 주섬주섬 챙기신다. 나는 할머니가 쥐고 계신 농약 뿌리는 긴 파이프 대를 잡으며 오늘은 내가 한번 뿌려 보겠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펄쩍 뛰시면서,

“신부님 이것은 못해요. 자칫 하다가 줄기에 농약이라도 닿으면 구기자 줄기가 연해서 쉽게 꺾어지기 때문에 농사를 다 망치게 돼요.” 하시면서 농약대 줄을 서둘러 뺏으셨다.
“아~ 괜찮아요. 제가 할 거에요.”
“아니에요, 신부님. 농약 주는 것은 제가 해야 돼요.”
이렇게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황급히 농약대 줄을 빼앗아 달아나는 할머니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농사일 중에서 농약을 뿌리는 일은 고역스럽고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하루 중 습기가 없는 시간대에 해야 하기 때문에 덥기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농약을 희석하고 뿌리는 동안 약냄새에 절어서 숨을 조절해 가며 쉬다보면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한다. 농약을 뿌리는 일 못지않게 그 뒷설겆이 또한 만만치 않다.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시려는 할머니 마음, 혹여 신부님이 일손 돕기 한다고 와서 농약 때문에 조금이라도 해를 입을까봐 한사코 사양하고 혼자서 밭으로 들어가신 할머니가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럽다.

이 할머니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사제들의 건강을 위해 제일 먼저 기도하신단다. 이런 분들 곁에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본당 신부는 늘 마음이 뿌듯하다.

농약대를 뺏어들고 황급히 밭으로 나가신 할머니를 뒤로하고, 옆집의 밭일을 조금 거들다 콩국수 두 대접을 먹고 돌아오면서,

“주님, 이들을 돌보아 주소서. 할머니가 늘 건강하게 하소서. 할머니가 걱정하는 자녀들도 주님께서 늘 돌보아 주소서. 아멘.”하고 주님께서 모두 헤아려 주시길 기도한다.  

<구일모 신부 / 대전교구 청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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