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본당 신부님들이 겪는 어려움 중의 하나는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돈이야 어디에서 빌려 올 수도 있겠지만 사람을 빌려 오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적다 보니 주일학교 교사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평소 아이들의 신앙생활을 돌볼 여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린 친구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학생들의 부족한 신앙교육을 어떻게 보충해 줄까, 그리고 학생들과 어떻게 하면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해 보았습니다. 궁리 끝에 학생들과 며칠간 여행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방학이 되면 학생들과 3박 4일, 혹은 4박 5일 동안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가 없는 이웃의 작은 성당 신부님과 뜻을 같이하여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올해로 벌써 네 번째인데, 올해에는 39명이 여행에 동참했습니다. 그동안에 이 땅의 서쪽, 동쪽 그리고 내륙지방을 다녀왔고 이번에는 남해 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아이들 중 대부분이 전국 곳곳을 다닐 형편이 못됩니다. 이렇게 몇 차례 더 다니게 되면 우리나라 곳곳을 거의 다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여행은 이른바 계획된 프로그램이 있는 여행이 아닙니다. 주어진 여건에 맞게 시간을 보냅니다. 미지의 땅에 가서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이 있으면 더 머무릅니다. 때로는 선조가 남긴 문화유산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자연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식사 또한 처한 상황에 맞게 해결을 합니다. 사먹는 경우도 있지만 간단히 준비해 간 밑반찬과 현지에서 조달한 것을 가지고 아이들이 손수 해서 먹기도 합니다. 밥을 직접 해 먹음으로써 어머님의 수고와 사랑을 몸소 느끼게 하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학생들이 가진 고민과 어려움도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에 학생들은 자신의 내면에 숨겨둔 이야기를 잘 내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마음을 여는 모습들이 보입니다. 이것도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냄으로써 좁힌 거리일 것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힘이 들 때도 있을법한데 서로 싸우는 모습을 못 보았습니다. 힘이 들어도 서로 배려해주고 협력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견스럽습니다. 형들이나 언니들은 동생들을 잘 보살펴줌으로써 윗사람으로서의 권위를 얻습니다. 권위라는 것은 사랑과 책임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아이들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동생들은 자신들을 이해해주고 돌보아주는 형들이나 언니들에게서 몸으로 사랑을 배웁니다. 그리하여 공동체 내에서 자연스럽게 질서가 생깁니다. 그 질서는 강압과 복종에서 비롯되는 서열이 아니라 배려와 협력에서 비롯되는 조화로운 질서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여행을 통해서 아이들이 얻는 소득이라고 봅니다.
저의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려 봅니다. 그러한 순간들은 모두 호사로움이나 편안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생을 하면서 친구들과 함께 나눈 우정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저의 경우 친구들과 함께 겪었던 체험이 서로 하나로 묶어주고, 현재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는 귀한 체험입니다. 아마 우리 아이들도 세월이 흐른 뒤에 저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고 봅니다.
‘몸으로 가르치니 따르고 말로 가르치니 반항한다’라는 옛말이 생각납니다. 함께 며칠을 지내다 보면 제가 생활하는 모습이 아이들에게 모두 노출이 됩니다. 말한 바를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그동안 신자들 앞에서 한 말을 얼마나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는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