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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합의성’(Synodalitas) 사제연수를 다녀와서 <김동희(모세) 신부 / 의정부교구>
   기쁨과희망   2020-06-05 17:09:46 , 조회 : 550 , 추천 : 93




며칠 전 1박 2일 간의 교구 사제연수에 다녀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재삼천년기의 교회에 바라시는” 여정인 ‘공동합의성’(Synodalitas)을 주제로 한 연수였지요. 오늘날 새롭게 대두된 듯하지만 실은 성경과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 자리하고 있는 ‘공동합의성’의 개념을 살피고, 그것을 교구와 본당의 사목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 모색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고개를 치켜드는 음험한 시점에서 열린 연수이다 보니 조금은 긴장감이 자리하였습니다. 하지만 두 개의 강의를 듣고 전체 나눔과 조별 나눔을 한 후 저녁식사를 하는데 분위기가 딱 좋았습니다. 비록 마주 앉지 못하고 조금은 거리를 두고 엇갈려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였지만 저마다의 얼굴에선 반가움이 피어나고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지요. 하느님은 우리를 본래 이렇게 한데 어울려 살아가도록 만드셨나 봅니다. 사제들도 서로 만나 좋아 어쩔 줄 모르는데 젊은 친구들은 오죽했을까 싶습니다.

몇몇 친한 신부들에게 어울려 “한잔 하자” 제안하고픈 유혹도 있었지만, 방에서 조용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을 읽었습니다. 특히 눈에 들어 온 것은 제5장 ‘교회의 보편적 성화소명’과 제7장 ‘순례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이었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구성원 전체가 거룩함에 이르도록 부르심 받았다지요. 그러나 하느님은 무조건 끌고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무작정 끌려갈 백성도 아니지만요^^). 힘과 선물을 주고 나아오도록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성령께서 인도해주시는 ‘신자들의 신앙감각’이 바로 그 선물이며, 이것이 바로 ‘공동합의성’의 기초에 자리한다 여겨졌습니다. 이미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들었으나 아직 세상 안에 머물고 있기에 흔들거리며 나아가는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종말론적 교회의 신원에서 ‘함께 가는 길’로서 공동합의성이 왜 긴요한지 느껴졌습니다.
석 달 전 본당 주임으로 발령받아 와서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신부님, 지침을 내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였습니다. 사제들도 변해야겠지만 상명하복의 교회 분위기 속에 오래 머물렀던 신자들의 변화도 쉬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한국천주교회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추구하던 당시의 지식인층에서 그 신앙이 발아되었습니다. 아울러 그 신앙 안에서 신분사회의 한계를 넘어 평등하고 우애 넘치는 새 세상을 엿보았던 이들이 초창기의 주역들이지요. 그렇게 태생부터 선구적이던 교회였지요. 그런데 어느새 “사회는 다 변하였는데, 우리 가톨릭교회도 그나마 이제는 변화하려 하나 보네요” 하는 우려를 듣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공동참여와 공동책임 가운데 함께 가는 길! ‘결정의 과정’에 있어 인원과 절차가 늘어나 더 복잡해진 면도 있지만, “모든 사람 - 몇몇 사람 - 한 사람”으로 이어지는 ‘결정의 순간’은 오히려 우리 사제들에 익숙한 교회 전통이다 보니 또 힘겹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열정을 갖고 기운차게 사제로 살아왔는데 오십 중반에 이르러 힘이 조금 빠지고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동료 사제들이 나를 좀 도와주면 좋겠다.” “신자들이 나를 존경해주기보다는 나와 짐을 나누어 져 주면 더 좋겠다.”


<김동희(모세) 신부 / 의정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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