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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신부냐?” “나는 신부인가?” <상지종(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기쁨과희망   2020-12-03 15:06:15 , 조회 : 960 , 추천 : 81



며칠 전 밤늦은 시간에 친하게 지내는 후배 신부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술 한잔 걸친 후배의 사십분 넘게 이어진 동료 신부들에 대한 아쉬움과 울분이 섞인 넋두리를 들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웃으면서 찾지만 조금 성가시면 모른 척하고, 동료가 잘하는 것은 깎아내리고 부족한 것은 비웃으며, 없는 이야기를 꾸며서 술안주 삼아 뒷담화를 나누기도 하고, 관심분야와 사는 모습이 다르면 급기야 “네가 신부냐?”라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네가 신부냐?” “저게 신부냐?” 비록 입으로 내뱉지는 않았어도, 신부로 살아오면서 동료 신부들에게 마음속에서 수없이 쏟아냈던 경멸과 조롱입니다. 이는 “나는 신부다!” “나 같은 신부는 없다!” “나만큼만 해라!”라는 교만과 독선의 또 다른 민낯입니다. 생각해보니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러한 엄청난 죄의 뿌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순간순간 내 편의에 따라, 내 입장에 따라, 내 맘대로 동료 신부를 깎아내려 나를 올리고, 나를 추켜세워 동료 신부들을 짓밟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가 신부냐?”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이런 막말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언제 “너는 신부다!”라고 감히 인정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나와 같은 관심을 가지면 “너는 신부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신부냐?” 나와 함께 하면 “너는 신부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신부냐?” 내가 홀로 기도할 때 기도하고, 내가 사람들과 어울릴 때 함께 어울리면 “너는 신부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신부냐?” 내가 일할 때 일하고, 내가 쉴 때 쉬면 “너는 신부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신부냐?” 내가 즐기는 것을 즐기면 “너는 신부다!” 내가 즐기는 것을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즐기면 “네가 사제냐?” 그 기준은 바로 “나”였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것 역시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한에서 객관적인 기준으로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나 너나 모두 “주님의 사제”인데, 주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내가 버젓이 자리 잡고서, “나의 사제”가 되라고 강요한 것은 아닌지 낯 뜨겁기 그지없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향해 “네가 신부냐?”라고 제멋대로 단죄하거나, “내가 신부다!”라고 주제넘게 인정할 때에, 수많은 누군가는 나를 향해 “네가 신부냐?” “너는 신부다!”라며 화살을 쏘았을 것입니다. “주님의 사제”인 나에게서 “주님”은 사라지고 “사제”만 남고, “주님의 사제”인 너에게서 “주님”은 사라지고 “사제”만 남을 때에, 사제는 사제에게 서로를 길들이려는 포악한 짐승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사제는 사제를 필요로 한다고 했습니다.

동료 신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눈엣가시나 한낱 밀쳐내야 할 경쟁상대 쯤으로 여겨질 때에, 마음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치미는 “네가 신부냐?”라는 욕지기를 애써 누르며, 그렇게 여기고 있는 “나는 신부인가?”라고 반문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너도 나도 모두 “주님의 사제”임을 돌처럼 굳은 마음에 다시 아로새겨야 하지 않을까요.

<상지종(베르나르도) / 의정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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