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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제의 깨달음 <임문철(시몬) 신부 / 제주교구>
   기쁨과희망   2021-02-03 10:00:34 , 조회 : 430 , 추천 : 77



은퇴할 때가 머잖은 나이가 되었으니, 이제는 마음 가는 데로 살아도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從心)의 경지 끝자락이라도 잡을 만한데, 여전히 내 자신이 안타깝고 후회스런 날들이 많다.

요즘 내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은 “지금까지 나는 자기 잘난 맛에 살아 왔구나!” 하는 자각이다. 1980년대 초부터 40년 가까이 본당 사목을 해 오면서, 나는 늘 “능력 있는 신부”였다. 내가 가는 본당에는 주일마다 눈에 띄게 신자들이 늘었고, 그래서 주일 헌금이 팍팍 늘고, 세례자가 넘쳐나고, 주일학교는 활기에 넘쳤다. “신부 한 사람이 이렇게 본당을 변하게 할 수 있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나는 그게 다 내 잘난 덕분인 줄 알고, 사제로서의 자부심을 가졌었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뒷심이 딸린 건가? 구수하고도 감동적인 강론을 준비하고, 한껏 자애로운 얼굴로 대하고,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아드려도 본당에 변화가 없다! “내가 뭘 빠뜨리고 있지?”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내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그래서 잘나가던 시절을 돌이켜 보게 되었다. 첫 본당, 둘째 본당….

나는 늘 새 본당에 갈 때마다 신자들의 꽃다발을 성모님께 바치며 기도했다. “부족한 제가 어떻게 여기 본당 신부로서 잘 살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께 온전히 봉헌합니다. 어머니께서 알아서 해 주십시오.” 특히 둘째 본당은 교구에서 손꼽히는 큰 본당인데 남들은 보좌도 못 끝낼 서품 3년차에 맡게 되니 절로 기도가 나왔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초심을 잊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성과들이 다 내 잘난 덕분인 줄 여기게 된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니 당시는 한국천주교회가 한창 잘 나갈 때였고, 사회적으로도 고도성장을 할 때였으며, 도시집중화가 극성인 무렵이었던 시절. 마침 내가 맡았던 본당들이 모두 외적 성장을 할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나는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었을 뿐이었다.

문득 오래전 안식년 때 예루살렘에서 만난 미국 노사제가 떠올랐다. 그는 내가 성령운동 안에서 치유의 은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방을 찾아와 기도를 청했다. 나이는 점점 많아지고, 능력은 뒤처지고, 그런데 교구 사정상 은퇴는 할 수 없어 본당을 맡아야 하는데 너무 걱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로 기도할 실력은 없고 우리말로, 또 심령기도로 안수기도를 해 드렸는데, 다음 날 아침 너무도 밝아진 얼굴로 기쁨에 차서 말하는 것이었다.  “사랑하기만 하면 다 되는 걸 이제 깨달았어. 고마워.”

본당에 신자가 늘고, 세례자가 늘고, 멋들어진 성당을 몇이나 짓고 그러면서, 사실 나는 내 본당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거기에서 진실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모시고 간 사람이 평생 한 명이라도 있었는가? 모든 것이 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그 모두 내 본당이 아니고 하느님의 본당이었는데, 내 신자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이었는데….

내 마음에 하느님 사랑이 있기는 한 건가? 진정 신자들을 사랑하기는 한 건가? 이제 나도 사랑하며 살고 싶다. 그 미국의 노사제처럼!


<임문철(시몬) 신부 / 제주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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