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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친구 신부의 유서 <편집부>
   기쁨과희망   2019-09-06 12:51:15 , 조회 : 275 , 추천 : 39




그는 농민, 농촌을 사랑한 신부였습니다.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 임기가 끝난 후, 농촌에 들어가 혼자서 거의 20년 동안 농사를 지었습니다. 성직자와 공동생활을 간절히 원했지만 함께하는 신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2000평의 논과 밭을 유기농으로 경작했습니다. 교구청으로부터 생활비 보조금를 받지 않았습니다. 한 달 생활비로 8∼10만 원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 금액으로 생활했다는 것은 절약도 많이 했지만…, 농사일과 자연에서 노동으로 나머지를 열심히 거두어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적당히 일한 것이 아니라 농사일을 철저하게 한 것입니다.

70세를 앞두고 은인으로부터 500만 원의 재정적 도움을 받아 혼자서 전국 국토순례를 하였습니다. 동해안 휴전선에서부터 시작해서 해안선을 전부 걸었습니다. 그리고 울릉도, 백령도 섬에도 찾아가 걸었습니다. 120여 일 동안 3000km 이상을 걸었습니다. 하루에 평균 25km 이상을 걸었다고 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 왕복을 네 번 정도 하는 거리입니다. 그 순례 중에 혹시 세상을 떠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서를 남겼습니다(2008년 12월). 4년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내가 의식을 잃으면, 병원의 억지 인공조치(인공호흡기 설치 따위)를 하지 말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도록 해주십시오.
2. 내가 죽으면, 나에 관한 ‘뒤처리’는 이 유서에 따라 해주십시오.
3. ‘쓸 만한 장기’는 필요한 분들에게 빨리 주십시오.
4. 장례식은 아주 간소하게 하고, 쓸 만한 장기를 뺀 ‘시신’은 화장해서, 내가 농사짓고 살던 집 마당의 우리 소나무(마당 동쪽 산수유나무와 구상나무 사이) 밑에 뿌려주십시오.
5. ‘유품’은 신대원 신부가 안동 교구장과 의논해서 처리하십시오.
6. 대지(봉화 명호 풍회리***밭의 집터 주변 일부)는 공동투자한 7인(류강하, 오태순, 장덕필, 박준영, 김병상, 황상근, 정호경 신부)의 수락을 얻어 안동교구에 헌납했습니다. (헌납 조건은 유기농사를 하면서 소박한 자녀 배움터, 일터, 쉼터를 가꾸며 살 성직자나 수도자 평신도에게 맡기기입니다.)
7. ‘저작물 및 미간행 원고’는 금동혁(다미아노, (주)우리밀 회장)에게 맡겨,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서 원하는 이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8. 남은 돈(우체국 701136***)이 있으면, 사망신고 전에 찾아 장례비로 쓰고, 혹시 남으면 배고픈 이들에게 주십시오(카드는 내 지갑에 있고, 비밀번호는 ****입니다).
9. 생전에 알게 모르게 ‘도움과 깨우침’을 주신 많은 분과 온갖 것들에게 감사합니다.
10. 생전에 알게 모르게 저지른 잘못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11. 모든 생명이 욕심을 버리고, 더불어 일하며 정을 나누고 사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경쟁의 문명은 공멸입니다. 상생의 문명만이 구원의 길임을 믿습니다.

여러 번 읽으면서 많이 오랫동안 숙고하며 썼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서를 쓴 후 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투병생활을 하시면서도 매일 2시간씩 외국말로 성서를 필독하였습니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병고와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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