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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함께 하기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 / 의정부교구>
   기쁨과희망   2020-04-03 17:33:40 , 조회 : 240 , 추천 : 51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따가운 낯선 시선들이 두렵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서로를 향한 의심스러운 시선들이 바로 얼마 전처럼 반갑고 부드럽게 느껴질 때가 곧 오겠죠. 그날을 간절히 바라며, 우리 잠시 홀로 머무는 시간을 가져 보아요. 보고 싶은 벗들, 만나고 싶은 벗들, 안아주고 싶은 벗들. 우리 잠시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만나고, 마음으로 안아주어요. 지난날의 고운 인연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나게 뜸 들이는 시간을 가져 보아요. 쑥스러워 주저했던 고맙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활짝 웃으며 전하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가져 보아요. 혹시나 미안한 것이 있다면, 곧 다시 만나는 날, 진심어린 사과의 말 전하리라 다짐하는 시간도 가져 보아요. 지금 잠깐의 떨어짐이 더욱 값진 만남을 잉태할 것이니, 우리 잠시 보고 싶은 이들에게서, 만나고 싶은 이들에게서, 안아주고 싶은 이들에게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나 주어요.”

지난 3월 1일자 한겨레신문의 “‘앞으로 2주가 중요’…모임·외출 최소화합시다”라는 기사를 SNS에 공유하면서 쓴 글입니다. 앞으로 2주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벌써 한 달이 지나가지만 아직도 앞날은 불투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더 옳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낯익은 표현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래저래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무엇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으뜸은 ‘만나서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자연이든, 궁극적으로 하느님이든 상관없습니다. 무엇을 주고받는가도 어쩌면 부차적입니다. 그저 함께하고픈 겁니다. 함께 할 때에 비로소 ‘나는 사람이구나’, ‘나는 살아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들을 찾고 발전시켰는지도 모릅니다. 문자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예술이 그렇고, 다양한 매체를 포함해서 오늘날 각종 SNS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의 이면에는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의 소외와 배제가 암울하게 똬리를 틀고 있고, 고갱이 없이 껍데기만 화려하게 나풀거리는 가벼움이 배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우리에게 강요된 불편한 현실이 아니라, 함께함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귀한 성찰의 계기로 삼는 것이 바람직할 듯싶습니다.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들은 홀로 머물며 세상과 호흡한다고 합니다. 물리적인 함께함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인 함께함의 가치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어도 우리는 함께할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 안에서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계 안에서 마치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이참에 이 착각에서 깨어나고 한계를 넘어 참으로 함께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벽에 온 누리와 모든 이, 그리고 이 모두를 빚으신 하느님과 함께하려고 홀로 미사를 봉헌합니다.


<상지종(베르나르도) 신부 / 의정부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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