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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사이를 지나며..


   

야훼 이레와 에벤 에제르와 단상들 <양기석(스테파노)신부 / 수원교구>
   기쁨과희망   2020-08-06 10:35:35 , 조회 : 219 , 추천 : 28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주머니는 열어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나이가 들수록 어지간한 사람들은 말이 많아집니다. 또한 요즘 세태로 보면 노후 걱정에 씀씀이 또한 인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말이 많아진 제 자신의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술값 내는 것을 즐겨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도입니다.

언젠가부터 나이를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신부로, 좋은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성경의 장면이 있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모리야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는 주님의 명을 이행하려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1-12).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비로소 모든 것은 ‘주님께서 마련하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루신다는 체험을 합니다. 그는 이 체험을 통해 진정한 신앙인의 표양을 보여줍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에 정착하는 과정에 있었던 필리스티아인들과의 전투에서 힘겨워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로지 ‘주님’께 대한 믿음만을 약속받은 사무엘은 미츠파의 전투에서 크게 승리한 후에 “주님께서 여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며, 돌을 세우고 “에벤 에제르”라고 명합니다(1사무 7,12). 사무엘은 자신과 이스라엘의 무력이 필리스티아인들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물리치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도우신 것’이라 고백한 것입니다.

신부 생활에 경력이라는 것이 쌓이면서 어느덧 ‘내 방식’, ‘내 스타일’이라는 것이 생겼습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나온 듯한 이런 모습은 자주 ‘내가 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이러한 생각은 종종 다른 동료 사목자들의 활동을 쉽게 판단하고 폄하하기까지도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아브라함과 사무엘, 그리고 성경의 위대한 성조들과 예언자들이 그러하였듯이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순명의 태도로 복음을 전하라 요청하십니다. 제대로 된 목소리조차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의 음성에 귀 기울여, 그들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세상에 전하는 태도를 가지라 요청하십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잘 늙어가는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양기석(스테파노)신부 / 수원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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